↑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50주년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국립공주박물관] |
무령왕릉이 1442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최악의 부실 발굴이라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조사단 경험과 능력 부족, 언론사들의 지나친 취재경쟁 등으로 17시간 만에 끝난 것이다. 심지어 출토 유물을 청와대로 옮겨 대통령이 마음대로 만지는 있을 수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립공주박물관이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14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특별전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를 연다. 무령왕릉 출토유물 5232점 전체를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중 왕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전시했다. 도입부에는 백제인들의 내세관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받침 있는 은잔을 전시하고 그 안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왕과 왕비의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진묘수 등 주요 유물은 진열장 유리를 저반사유리로 교체하고 조명과 받침대를 개선해 감상 효과를 높였다. 왕과 왕비의 목관은 3D 스캔해 실제 크기로 새롭게 전시했다. 또한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가 다시금 강국이 됐음을 선언한 '갱위강국(更爲强國)' 선포 1500주년을 기념해 관련 자료도 함께 펼쳤다.
↑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50주년 전시. [사진 제공 = 국립공주박물관] |
'프롤로그: 세상에 드러난 무령왕릉'에서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소개하고, 무령왕릉의 우연한 발견과 그 이후 이뤄진 발굴조사 과정을 본다. 무령왕릉 발견 최초 보고 문서와 발굴조사 실측 도면, 탁본 등을 공개하고, 당시 언론 보도 내용과 분위기를 소개한다.
'제1부: 무령왕릉과 백제사'에서는 무령왕릉 발굴 이후 50년간 이뤄진 주요 학술성과를 보여준다. 백제사 연구는 무령왕릉 발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무령왕릉 무덤 구조와 그 안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은 백제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됐다. 무령왕에 대해 기록된 묘지석과 삼국유사, 백제의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중국 청자와 오수전, 동제 그릇 등을 전시했다.
'제2부: 무령왕릉과 공주박물관'에서는 무령왕릉 발굴 이후 50년 동안 공주박물관이 무령왕릉 유물을 관리, 보존하며 정리한 성과들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밝혀낸 내용을 소개했다. 무령왕과 왕비 목관 크기와 구조, 장식 부착 여부 등 정밀 조사 결과를 반영한 목관 재현품을 제작·전시했다. 또한 무령왕과 왕비 금동신발 내부에서 발견된 직물 등을 조사해 백제의 뛰어난 제직(製織)기술을 보여주는 금(錦) 직물과 라(羅) 직물 재현품을 제작·전시했다. 미리 염색한 여러 가지 색실을 사용해 중조직으로 짜낸 금(錦)은 매우 귀한 고급 견직물이었다.
↑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50주년 전시실. [사진 제공 = 국립공주박물관] |
무령왕과 왕비의 베개, 발받침은 나무로 만들어 장기간 전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상설전시실에서는 복제품을 전시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14일부터 26일까지 11일간 왕과 왕비 베개, 발받침 진품을 모두 선보인다. 그 후에는 왕의 것과 왕비의 것을 교대로 선보일 예정이다.
'에필로그: 무령왕릉,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에서는 무령왕과 왕비 장례 과정, 여러 유물 용도 등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앞으로의 연구 과제와 방향에 대하여 소개했다.
전시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무령왕이 세상을 떠난 523년부터 무령왕릉이 발굴된 1971년까지 무덤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디지털 실감 영상 '무령왕릉 1,448년간의 이야기'를 상영한다.
국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