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사진 제공 = 문화재청] |
1800년대 조성됐던 별서(교외에 따로 지은 집) 관련 유적으로 주변 자연 경관이 수려하며 사랑채와 안채 등 건물지와 전통조경 양식 연못, 정자 터 등이 잘 보존돼 있다. 그동안 백석동천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아 다양한 가설이 있었지만 대대로 서울에 살며 벼슬을 한 경화세족 출신 애사 홍우길이 19세기에 백석동천 일대 백석실(白石室)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1786∼1856) '완당전집'에는 그의 별서에 백석정 옛 터가 있었다고 기록했으며, 조면호(1803∼1887)의 시에 백석실은 계합상공(桂閤相公)의 별업(別業)이었으나, 당시 홍우길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문화재청은 성북구 성락원의 부실 고증 논란 이후 진행 중인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별서정원의 역사성을 검토해 서울 백석동천을 비롯한 11곳에서 유래, 소유자, 변화 과정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성락원은 실존하지도 않은 인물이 소유했다는 잘못된 사실이 오랫동안 수정되지 않아 논란이 됐으며, 문화재청이 성락원의 명승 지정을 해제한 뒤 '성북동 별서'라는 명칭으로 재지정한 바 있다.
이번에 전남 담양 소쇄원이 양산보(1503∼1557)가 스승 조광조 유배 이후 낙향해 은둔하며 조성했다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원 명칭인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으로, 그동안 양산보 호인 '소쇄옹'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문헌을 살펴본 결과, 담양 출신 인물인 면앙정 송순(1493∼1582)이 지어준 이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담양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 설명돼 왔으나, 실제로는 김성원이 정자를 세웠고 그의 장인 임억령이 '식영'(息影)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거창 수승대는 퇴계 이황이 지은 시 '기제수승대'(寄題搜勝臺)를 근거로 작명했다고 알려졌으나, '수송대'(愁送臺)가 본래 이름으로 확인됐다. 수송대에는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 사신이 송별할 때마다 근심을 이기지 못했다는 설과 뛰어난 경치가 근심을 잊게 한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수승대와 수송대, 두 명칭을 모두 사용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명승 명칭을 수승대에서 수송대로 변경하기로 했다.
↑ 거창 수송대. [사진 제공 = 문화재청] |
전남 순천 초연정 원림과 경북 예천 초간정 원림은 건물을 다시 짓는 중수와 관련된 사실이 파악됐다. 초연정 원림은 청류헌 조진충이 1836년 초가로 지은 뒤 그의 아들 만회 조재호가 1864년 기와지붕으로 중건했다. 초간정 원림은 초간 권문해가 1582년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 죽소 권별이 1626년 중수한 건물도 불에 탔고, 이후 후손 권봉의가 1741년 현재 자리에 중수했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성북동 별서와 관련해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나오는 '육교시사(六橋詩社)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으며'라는 구절의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삭제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역사성 검토 결과를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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