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관 20주년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화익 이화익갤러리 대표. [사진 제공 = 이화익갤러리] |
개관 20주년 전시에서 만난 이 대표는 "2000년 남편이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해 '백수'가 되는 바람에 내가 사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다행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좋아서 판매가 잘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순풍에 돛 단듯 운영했지만 2003년 위암 수술을 받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병상에서 화랑을 접어야 하나 고민할 때 계원예고 교사를 그만두고 작업에만 전념하게 한 김덕용 작가가 떠올랐다.
이 대표는 "김덕용 선생을 설득해 전업작가로 만들어놓고 무책임하게 화랑 문을 닫을 수 없었다"며 "심기 일전해 2004년 김덕용 개인전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천만다행으로 2005~2007년 미술 호황이 도래했다. 서울 송현동 주택을 매입해 개조한 후 2005년 김종학, 김용철, 사석원 그룹전으로 이전 개관전을 열었다.
그 해 만난 김동유 작가와 인연도 잊을 수 없다. 너무 가난해 충남 천안 천막 축사에서 작업하던 그의 '이중 초상'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소개해 대박이 났다. 2006년 그의 작품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3억2000만원에 낙찰돼 당시 현존 국내 작가로는 해외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멀리서 보면 마릴린 먼로 모습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마오쩌둥 얼굴이 수없이 그려진 작품으로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인생의 덧없음을 담은 작품이다.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던 김동유 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 해요. 당시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중국 초상화가 잘 팔려 김동유 선생의 이중 초상화를 추천했죠. 크리스티 경매 도록에 실리면 우리 작가를 외국에 알릴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2006년 싱가포르 아트 스테이지를 시작으로 세계 아트페어에도 꾸준히 나갔다. 2012년에는 가고시안 등 세계적 갤러리들이 몰리는 아부다비 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해 10년째 부스를 차리고 있다. 중동 왕족이 선호하는 신상호 작가의 말 조각, 차영석 작가가 연필로 그린 매, 김덕용 자개 회화 등을 많이 팔았다. 이 대표는 "말과 매, 자개는 아랍인들이 좋아하는 소재다. 아랍 왕족은 비싸도 눈에 들면 값을 깎지 않고 무조건 산다"고 말했다.
국외 아트페어 선전과 달리 국내 운영은 불황으로 힘들었다. 한국화랑협회장을 맡고 있던 2018년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건강이 우선이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서서 심신을 추스르고 화랑에 나왔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할 정도로 고전했지만 올해들어 미술 투자 열풍이 일어나고 지난 1월 타계한 물방울 화백 김창열 작품이 잘 판매되면서 흑자로 돌아섰다. 이 대표는 "1981년 이화여대 대학원생부터 알았고 갤러리현대에서 근무할 때 개인전을 열었던 김창열 선생이 외국 아트페어에 참가할 작품을 주셨다"고 말했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무명 작가를 발굴해 전성기를 함께 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2006년 충북 청주의 불꺼진 식당에 걸린 그림에 반해 개인전을 열었던 임동식 작가는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다.
안목이 높은 이 대표가 작가를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그는 "그림에 독특한 특징이 있고 작가 인성도 좋아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림 가격이 쉽게 오르지 않기에 화랑 사업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는 죽은 후에야 그림이 비싸게 팔렸다"며 "함께 한 우리 작가들이 세계 미술사 거장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이화익갤러리 개관 20주년 기념 전시 전경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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