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 알리스 '금지된 발걸음(Prohibited steps)' |
벨기에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가 지난해 10월 홍콩 라마에서 제작한 영상 작품 '금지된 발걸음(Prohibited steps)'은 코로나19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은유한다. 언제 어디서 감염될 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처지가 화면 속 남자와 비슷하다. 뿌연 화면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시대를 상징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기획전 '재난과 치유'는 코로나19가 일상에 미친 영향을 성찰한 예술 작품들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전 지구적 재난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동시대 작가 35명 작품 60여점을 펼쳤다.
전시장에서 반짝거리는 일본 작가 미야지마 다쓰오 숫자 설치 작품 '카운터 갭(Counter Gap)'은 확진자, 사망자 숫자로 다가온다. 코로나19 이전이었다면 시간이나 돈 등 다른 숫자를 떠올렸겠지만, 전대미문 전염병이 우리의 인식 체계를 변화시켰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작가는 1부터 9까지 계속 반복되는 숫자를 통해 시간의 변화, 삶의 순환을 표현해왔다.
영국 작가 리암 길릭은 세로 7m에 달하는 숫자 설치 작품 '상승하는 역설'을 전시장 벽에 붙였다. 숫자 1과 빼기, 더하기 부호 사이에 괄호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결과가 0과 1이 나오는 작품이다. 0은 죽음, 1은 삶을 의미하며 팬데믹과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생사가 엇갈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 내부를 본뜬 작업을 계속해온 설치미술가 서도호 신작 'ScaledBehaviour_runOn(doorknob_3.11.1)'은 '집콕' 시대 부산물이다. 건물 내부 개미 움직임과 거미집 형상을 참조해 폴리에스터 실로 디지털 모형 윤곽선을 만들었다. 마치 혈관 속 혈액 흐름이나 바이러스 발현 형태를 연상시키면서 팬데믹 시대 심리상태와 결합된다.
↑ 서도호 `ScaledBehaviour_runOn(doorknob_3.11.1)`.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
전시 대표작으로 내세운 독일 개념미술 작가 요제프 보이스 1985년 작품 '곤경의 일부(Plight Element)'는 치유를 의미한다. 독일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작가가 전투기 사고로 러시아 반도에 추락했을 때 그를 구해준 타타르 유목민의 양털 담요(펠트)를 둘둘 말아서 작품으로 만들었다. 당시 독일은 소련을 침공한 적국이었는데도 사람의 생명부터 구하는 인류애를 담았다.
양옥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타타르 유목민이 보이스의 상처에 버터를 바르고 펠트로 덮어줬다고 한다"며 "재난과 치유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어서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대여해왔다"고 설명했다.
↑ 요제프 보이스 `곤경의 일부`.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
이배 신작 '불로부터'는 정화 기능을 가진 숯으로 전염병이 끝나기를 염원하는 것 같다. 대형 숯 조각이 미술관 천정에 매달리거나 바닥에 놓여 있다. 작가는 죽음에서 삶으로, 소멸에서 생성으로의 순환을 상징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 이배의 신작 `불로부터`.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
최악 상황에도 솟아나는 희망을 전하는 이번 전시는 8월 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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