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흔치 않은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공연장에서 보기 어려운 중년 남성들이 대거 객석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다. 공연 중간에는 키득키득 웃음소리까지 들린다. 뮤지컬 고전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주인공 테비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는다. 테비예는 대표 넘버 '내가 만약 부자라면'에서 매일매일 무거운 수레를 끌며 우유와 치즈를 배달하는 고단한 노동에도 딸 다섯을 빠듯하게 키우는 현실의 버거움을 토로한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딸 셋이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사랑을 찾아 집을 나설 때 아버지가 느끼는 배신감과 씁쓸함이 세월을 뛰어넘어 진한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 M4_내가부자라면_테비예_양준모_2
서울시 뮤지컬단이 창립 60년을 맞이해 선보인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달 16일까지)은 뮤지컬 고전 중의 고전이다. 19세기 유대인 소설을 원작으로 1964년 뮤지컬로 제작됐다. 대표곡 '선라이즈, 선셋'은 불후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 M20_피들러_ KoN
코로나19 이후 고전이 부활하고 있다. '지붕위의 바이올린' 뿐 아니라 뮤지컬 '시카고' 등 그 자체가 고전인 경우도 있으며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도 무대에 줄지어 오르고 있다. 대학로에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 뮤지컬 '블루레인'이 드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1919년작 데미안도 무대에 올랐다. 그간 다자이 오사무, 현진건, 김동인, 모파상 등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극으로 소개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양손프로젝트는 '데미안'을 통해 장편소설 1인극이라는 도전장을 냈다. 배우 양종욱이 혼자 4시간에 걸쳐 더줌아트센터에서 싱클레어의 내면을 연기한다.
↑ 프랑켄슈타인 공연 사진
서울에 이어 용인에서 공연이 이어지고 있는 국립극단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도 중국의 고대 희곡인 조씨고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단테 신곡 지옥편도 대학로예술극장에서 16일까지 열린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를 재해석한 뮤지컬 '그레이트코멧'도 이달 30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다.
↑ 프랑켄슈타인 공연 사진
고전은 늘 재해석의 대상이지만 최근 들어 유독 무대화가 활발한 것은 코로나 사태가 부른 시대적 고단함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에 출연한 배우 박성훈은 "고전 작품은 주로 전쟁 등 시대적 고단함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고전이 주는 강한 메시지들이 있다"며 "지금 시기에 더욱 희망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대가 영웅을 낳듯, 고전은 인류의 위기 속에서 꽃피는 경우가 많다. 최근 무대에 오른 작품들도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홀로코스트, 전염병 등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고난을 극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보편적 메시지가 코로나에 지친 이 시대에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전 속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힘이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도 고전 재해석 열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오는 11월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3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신이 되려 했던 인간, 인간을 동경했던 피조물,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생명의 본질 등을 되짚는다.
[이향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