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연극_해롤드와모드_나란히 앉아있는 모드(박정자)와 해롤드(임준혁) |
극중 19세 청년 해롤드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다.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머니의 틀에 박힌 잔소리 속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가짜 자살소동을 벌인다. 성당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취미다. 그곳에서 장례미사를 앞두고 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찾고 있는 80세 노인 모드를 만난다. 첫만남부터 좌충우돌 엉뚱한 매력을 뽐내던 모드는 도심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나무를 마음대로 뽑아와 성당 묘지에 심으려다 발각돼 해롤드와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신부의 차를 훔치는 기지를 발휘한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도덕과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모드는 전쟁 때 남편을 잃은 나치 수용소 생존자로 암시된다. 푸른 바다 위 상공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자유롭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초롱초롱 빛나는 별 같은 존재가 모드다. 그에 비해 해롤드는 내면에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어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더 젊고 생기있고 도전적인 인물이 80세 노인인 것이 역설적이다. 해롤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삶을 이해하는 모드를 만나면서 제대로 숨을 쉬고 웃음을 찾게 된다. 급기야는 반지를 사서 프로포즈까지 계획한다.
팔순이 되는 해 기필코 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했던 배우 박정자를 위한 작품이다. 노년에도 그토록 맑고 고운 목소리에 또렷한 음성과 발음이 가능하다니. 리듬감 있는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극 중간중간 눈을 감고 싶어진다. 장풍을 쏘는 귀여운 몸짓은 덤이다.
↑ 2021 연극_해롤드와모드_나무 위 모드(박정자)와 해롤드(임준혁)_(1) |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해. 이 두 가진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야." 진짜 감정을 표현하는 걸 겁내지 말라면서 모드가 건넨 말이다.
모드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 꽃다발을 하나씩 살펴보며 이렇게 읊조린다. "어떤 건 작고 어떤 건 통통하지. 그리고 어떤 건 왼쪽으로, 어떤 건 오른쪽으로 자란단 말이야. 또 어떤 건 꽃잎조차 없는 것도 있어. 눈으
중년 뿐 아니라 노년층 관객도 상당수다. 서울 삼성역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이달 23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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