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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갑사 대웅전. [사진 제공 = 문화재청] |
비석은 고려말 처음 건립됐고, 1300년대 초반 쓰러졌다가 다시 세워졌다. 이후 정유재란 때인 1597년 완전히 훼손됐으며, 1616년 순천부사로 부임해온 이수광이 이듬해 재건했다. 이수광이 중건한 비석의 '八馬碑'(팔마비) 세 글자는 진사 원진해의 글씨이고, 뒷면에 새긴 글은 이수광이 짓고 동지사(同知事·관직의 하나) 김현성이 글씨를 썼다. 옥개석(지붕돌), 비신(碑身), 비석 받침돌을 갖춘 조선 시대 일반적인 비와 달리 비신 위에 옥개석이 없고, 비석 받침돌에는 연화문(蓮華文)이 새겨져 있는게 특징이다.
고려 시대 지방관의 청렴을 기린 전남 순천 팔마비가 전남 유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23일 팔마비를 비롯해 공주 갑사 대웅전과 의성 대곡사 범종루 등 지방 유형문화재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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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팔마비.[사진 제공 = 문화재청] |
문화재청은 "17세기에 지어진 다포계 맞배집의 전형적인 형식을 공유하며 조선 후기 건축 경향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한다.
경북 유형문화재에서 보물이 된 의성 대곡사 범종루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전소돼 1644∼1683년 사이에 중창됐다고 전해지는 정면 3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 건물이다.
문화재청은 현존하는 17세기 전반 누각 대부분이 3칸 평면이며, 이후 누각 평면이 5칸, 7칸으로 확장돼 가는 경향을 볼 때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같은 크기 대들보 2개가 사용됐는데, 다른 누각 건물이나 사찰 불전에서 찾기 어려운 사례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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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 대곡사 범종루.[사진 제공 = 문화재청] |
한편 문화재청은 국보 제14호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을 원래 명칭인 영천 거조사 영산전으로 변경했다. 거조암은 1912년 은해사(銀海寺)의 말사(末寺)가 되면서 바뀐 이름으로, 원래 명칭은 거조
문화재청은 2007년 조계종에 거조사로 사명을 인정받았고, 2003~2005년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상당히 넓은 사역에 불전과 탑 등이 확인되는 등 사찰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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