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바틴의 초상. [사진 제공 = 따찌아나 심비르체바] |
1895년 10월 8일 새벽 러시아 청년 '사바틴'은 경복궁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의 요청에 따라 당직을 서는 중이었다. 새벽 4시 조선인 부령 이학균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을 깬 그의 눈에 일본군 병사 40~50명이 들어왔다. 일본인들은 조선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어냈고 더러는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일본인을 만나 왕후의 거처를 추궁당한 사바틴은 "왕후 처소의 뜰에서 목격한 모든 조선 여성들이 전부 살해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나중에 생생히 증언했다. 이 구체적인 증언 덕분에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을 자행했다는 것이 만천하게 드러났다.
↑ 사바틴이 그린 경북궁 내 시해장소 지도 [사진 제공 =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사바틴은 어떻게 궁궐 깊숙한 곳에서 일본인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두 눈으로 지켜보게 된 것일까.
전시는 역사의 중요한 증인이 된 사바틴에 대한 개인적 스토리 뿐 아니라 한국 근대 건축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서의 삶도 조명한다.
↑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사바틴의 증언서. [사진 제공 =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1883년 상하이에서 머무르다 해원을 모집하던 묄렌도르프 일행에 의해 조선에 입국했다. 스물 세살의 나이였다. 인천해관에서 승선 세관감시원으로 일하던 그는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 러시아 공사와의 친분과 고종의 신임으로 한국 근대 건축물에 적잖은 발자취를 남겼다. 경복궁 내 관문각과 러시아 공사관 건축에 참여했으며 서대문 독립문과 덕수궁 정관헌·중명전, 외국인 사교클럽이었던 제물포구락부와 1902년 서울 정동에 세워졌던 서양식 호텔 손탁호텔 설계와 건립에도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첨탑만 남아있는 러시아공사관은 아관파천 때 고종이 세자와 함께 1년간 머물던 곳이다.
↑ 전시 관람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주한 러시아 대사. [사진 제공 = 문화재청] |
전시에서는 사바틴이 그린 경복궁 내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와 시해에 대한 사바틴의 증언서(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소장)를 확인할 수 있다. 그가 건축에 참여한 러시아 공사관 등 모형 3점과 사진,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는 19일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한러 양국은 수교한지 30년 됐지만 양국 우호 관계는 150년 이상 이어져 왔다"며 "이 전시를 통해 양국이 서로 더 잘 알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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