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선생님과 녹음할 땐 어느 하나도 '대충'이라는 게 없습니다. 녹음 장소부터 시작해 어떤 피아노를 쓸지, 어디에 놓을지, 또 음색은 어떻게 할지 매 곡마다 맞춰야 하죠." (레코딩 프로듀서 최진)
피아니스트 백건우(74·사진)는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린다. 세계 주요 음악당에서 연주하고,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피아노 앞에 한없이 겸허해서다. 일흔을 넘겼지만 아직도 매일 거르지 않고 연습한다. 녹음할 때면 작곡가에 대한 문헌을 모조리 찾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이번 신보 '슈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부터 "완전히 슈만과 보냈다"고 할 정도로 줄곧 몰두했다. 악보뿐 아니라 그 시대의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생활양식까지 공부하며 어떻게 이 곡들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 슈만은 어떤 심정으로 이 곡을 썼을지 끈질기게 고민했다. 그렇게 한땀한땀 완성시킨 슈만을 지난달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세상에 내놨다.
오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시작으로 경기·광주·인천·통영 등을 돌며 전국투어도 가진다. 아내 윤정희가 살고 있는 파리에서 귀국해 막 자가격리가 끝난 그를 6일 화상 앱 '줌'으로 만났다. "슈만의 세계는 복잡합니다. 젊었을 때는 사실 상상하기가 힘들었죠. 이번에 그를 이해하는 데 한 고비를 넘겼고 또 녹음을 하면서 슈만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 왔죠."
앨범은 각각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으로 이름 붙은 2장의 CD로 구성돼 있다. 슈만의 또다른 곡 '크레이슬레리아나'에서 나오는 두 가상 자아들이다. 오이제비우스가 내성적이고 잔잔하다면 플로레스탄은 밝고 열정적이다. 백건우는 "슈만의 초기와 후기에 초점을 뒀다"며 "어린이 같은 순수함과 인생의 쓰라림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장에서도 '아베크 변주곡' '아라베스크' '유령 변주곡' 등을 연주하며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 중에서도 유령변주곡은 특히 묵직하다. 그와 같이 녹음한 레코딩 프로듀서 최진은 "마음의 에너지가 소진돼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계속됐다"며 "슈만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유서처럼 적어놓은 것 같은 연주"였다고 고백했다. 수많은 연주자들과 녹음하며 곡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진 그도 그 순간만큼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사람들 사이가 멀어지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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