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는 띄워져 있지만, 그 사이로 여러분의 마음이 채워졌으면 좋겠어요. 침을 튀기면서 노래를 따라부르진 못해도 마스크 아래로 작게 같이 불러봐요."(키보디스트 잔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라이브 하우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여름 정기 공연 '이른 열대야'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개최됐습니다.
모든 객석은 앞뒤와 좌우 자리를 비운 '거리두기 좌석제'로 운영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정부 권고에 따라 관객 간 거리를 1m로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해당 공연장은 원래 400명가량이 관람할 수 있는 장소지만, 브로콜리너마저는 약 170석만 오픈해 예매를 진행했습니다.
간호사 출신인 잔디는 방역팀을 총괄해 꼼꼼히 바이러스 예방 작업을 했습니다. 방역팀은 공연 세 시간 전부터 공연장 내외부의 사람 손길이 닿는 모든 곳을 소독했습니다. 곳곳에 비치된 손 소독제도 눈에 띄었습니다.
공연장 앞에는 '방역 존'을 마련해 의료인들이 관객의 체온을 재고 있었습니다. 대면 접촉을 줄이고자 문진표는 이날 정오까지 온라인으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감염자가 다녀가면 동선 확보를 위한 'QR코드 체크인'도 했습니다.
드러머 겸 보컬 류지는 공연 중 관객들에게 "문진표는 다들 작성하셨느냐"며 "나는 이름을 잘못 적어 잔디 언니에게 혼이 났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모든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이곳에 모인 관객들은 불평 없이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가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1/10' 등 대표곡으로 두 시간가량 공연하는 동안 마스크를 벗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콘서트장에서 보던 큰 소리의 '떼창'은 없었습니다. 대신 관객들은 마스크 아래로 노래를 작게 따라 부르거나 손뼉을 치며 공연을 즐겼습니다.
'이른 열대야'의 전매특허인 야외 앙코르 공연도 이어졌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 멤버들이 "안내 지시가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해 달라"고 요청했고, 관객들은 이에 따라 천천히 실내 공연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베이시스트 겸 보컬덕원은 "비록 바깥이지만 양팔 간격을 유지하자"며 모여 있는 관객들이 흩어지도록 독려했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유자차', '보편적인 노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등 앙코르곡을 선보인 뒤 공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콘서트, 음악 축제 등 대중음악 공연이 잇달아 취소되면서 '거리두기 좌석' 공연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연장은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자 한 칸씩 자리를 띄워 여유 있게 앉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수 이승환도 앞서 이 방식으로 콘서트를 치렀고, 인디밴드 솔루션스와 데이브레이크 등도 거리두기 좌석제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객석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하므로 아티스트가 벌 수 있는 수익도 그만큼 적어집니다. 소규모 공연을 주로 하는 데다, 자본금이 많지 않은 인디뮤지션의 경우 거리두기 좌석제로 공연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공연에 들어가는 금액 일부를 후원받았습니다. 잔디는 전화 인터뷰에서 "솔직히 후원이 없었다면 공연하기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한 인디 레이블 대표는 "거리두기 좌석제 공연은 동원해야 할 스텝은 많고 입장권 수익은 확 떨어지기 때문에 거의 '팬 서비스'나 마찬가지"라며 "대관료 등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어렵사리 공연하기로 한다 해도 살갑지 않은 여론에 부닥칩니다.
최근 1천석 이상 규모의 공연장에서 뮤지컬이나 클래식, 발레 등의 공연이 연이어 열리고 있지만, 대중음악 공연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주장합니다. 지난달 열린 코로나19
또 다른 인디 레이블 관계자는 "일부 수천 석 공연장에서 다닥다닥 앉아 보는 뮤지컬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지 않으냐"며 "대중음악 공연, 특히 거리두기 좌석 공연은 이보다 훨씬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좀 더 따뜻하게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