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는 2020년대 영국을 그린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의 암약과 이에 휘말리는 라이언스 가문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제공=왓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인공섬 홍샤다오에 핵 마사일을 날린다. 무역분쟁을 무력전쟁으로 압도하기 위한 전략이자, 레임덕에 빠진 자신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이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을 사회화하는 '미치광이 전략'에 혼란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시나브로 퍼져간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유럽의 경제를 붕괴시키고, 종신 대통령이 된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다. 유럽으로 쏟아지는 난민. 증오와 혐오를 추동하는 정치인들의 암약. 인류는 점점 선해지고 있다는 이성에 대한 믿음은 다시 한번 산산히 부서진다.
영국 BBC 6부작 '이어즈 앤 이어즈(Years&Years)’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세계를 그린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가까운 미래 영국을 배경으로 평범한 라이언스 가(家)의 삶을 비춘다. 거시적인 국제정치가 미시적 개인의 삶을 어떻게 균열을 내는지를 잔인하게 그려낸다.
"팔레스타인 문제요? 저는 신경 안씁니다. 우리집 쓰레기만 매주 잘 치워주면 바랄 게 없죠". 혜성처럼 등장한 여성 정치인 비비안 룩은 지독한 현실주의를 표방한다. 쏟아지는 난민, 불안한 치안, 경제 불황에 지친 대중의 속을 긁어주는 사이다 발언에 그는 영국 총리까지 오르는 데 성공한다. "아이큐 70 이하 시민의 선거권을 박탈하겠습니다"라는 비 상식적인 언행에도 대중은 비정상적인 세상을 바꾸는 데 비정상적인 인물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꺼이 한표를 던진다. 라이언스가의 넷째 딸이자 휠체어 장애인 로지조차 그의 계급과 배치되는 정치인 비비안 룩을 지지한다.
계급을 배반한 투표는 서서히 독버섯처럼 라이언스 가를 덮친다. 비비언은 우범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저가 주택 단지를 레드존으로 분류해 주민의 삶을 철저히 통제한다. 노동자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 로지는 집값이 낮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2등 시민으로 낙인찍힌다. 그것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의해.
장남 스티븐은 은행도산으로 재산을 잃고, 배달 플랫폼 노동자로 생계를 근근히 이어간다. 동성애자인 둘째 대니얼은 우크라이나 난민 출신 연인 빅토르가 추방당하면서 그와 재회를 위해 분투한다. 그 역시 비비안 룩이 만든 '안전한' 사회의 결과물이었다.
이어즈앤 이어즈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지금 현실정치에 대한 기시감이 있다. 국제 사회에서 그 어느때보다 '혐오의 달변가'들이 높은 지위를 누린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계는 점점 '이어즈 앤 이어즈'와 닮았다. 지나친 비관주의가 빚어낸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4년 전 미국 언론은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트럼프의 대선 당선 가능성을 10% 미만으로 내다봤다. 영국의 브렉시트도 가능성이 낮긴 마찬가지였다. 4년전 10%의 미미한 가능성은 지금 지독하게 잔인한 현실로 우리를 찾아왔다. 작품이 그리
는 세계가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라이언스 가문의 큰 어른 할머니 뮤리얼의 일갈을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곱씹는다. "우리는 그저 남탓만 하지. 시스템에 저항하기엔 우린 너무 무기력하다고 믿으면서. 지금 이건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씨근덕대고 불평만 했던 우리가".
[강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