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1910~1987)은 평소 집무실에 지필묵을 갖춰 두고 서예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주로 논어와 고사에서 따온 글귀, 경영철학과 생활신조를 짧은 경구로 썼다고 한다. 과도한 기교 없이 고졸했던 그의 서예 작품 '人材第一(인재제일)'이 25일 오후 4시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경매에 처음 나온다. '내 일생을 통해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할 만큼 인재 양성을 실천한 호암의 경영철학이 묻어나는 글귀다. 추정가는 2000만~4000만원이다.
↑ 19세기 8폭 민화 '모란괴석도'. <사진제공=케이옥션>
강하고 두터운 필세를 보여주는 고종황제(1863~1907)의 어필 '讀書志在聖賢(독서지재성현)'도 추정가 1500만~4000만원에 출품된다. '주자치가격언(朱子治家格言)' 구절로 '독서하는 것은 성현을 배우는 데 있다'는 뜻이다. 대한제국기에 포천군수를 역임한 한만용이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옥션은 고종황제와 호암 서예 작품을 비롯해 100억원 규모 미술품 175점으로 3월 경매를 연다. 특히 화사한 꽃으로 채운 19세기 8폭 민화 '모란괴석도'는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봄을 전해 눈길을 끈다. 가로 5m가 넘는 대형 화폭에 완성도가 높아 4억5000만원에 경매가 시작된다. 모란은 궁중과 상류층 집안을 장식하는 꽃으로 부귀와 행복을 상징한다.
↑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제티의 조선 견문기 '한국과 한국인'. <사진제공=케이옥션>
100년 전 서울 주재 이탈리아 외교관이었던 카를로 로제티(1876~1948)가 조선에 7개월간 체재하면서 조선 일상을 담은 견문기 '한국과 한국인' 사진 95점도 출품된다. 돈을 주조하는 조폐국, 돈의문과 숭례문 주변에 보이는 전신주 등은 근대화의 문턱에 들어선 조선 모습을 담고 있다. 물지게꾼, 옹기장수, 갓 수선공, 어린 군밤장수, 빨래터 아낙네 등은 120년 전 삶의 풍경을 구석구석 담아냈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던 인도 출신 작가 라킵 쇼(46)의 작품 '비취 왕국의 몰락 II - 실낙원 II'은 이국적이면서도 기이하다. 산산조각나 무너져 내리는 건축물과 바닥 위에 서로를 난자하는 미지의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추정가는 1억~6억원이다.
1985년 6월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에 실렸던 '샤바트 굴라 아프간 소녀' 사진도 나왔다. 다큐멘터리 작가 스티브 매커리(70)가 소련과 전쟁중이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찍은 사진으로 소녀의 눈빛에 전쟁 공포와 참혹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추정가는 1200만~2500만원이다.
근현대 작품 최고가는 한국 단색화 거장 박서보(89)의 1978년 연필 묘법과 이우환(84)의 1987년작 '바람과 함께'로 각각 9억원에 경매가 시작된다. 프리뷰 전시는 14일부터 25일까지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