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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리지날 시리즈 `바자르의 불꽃`은 18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제 발생한 자선 바자회 화재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바자르의 불꽃`은 화재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 여성들이 마주하는 프랑스 사회의 위선적인 현실을 그린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
재난은 고약스러울 정도로 약자부터 찾는다. 남자,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 앞에선 재난마저 고개를 수그린다. 파리 바자회 화재 사건은 이 괴팍한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한다. 2014년 4월의 대한민국처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바자르의 불꽃'은 120년 전 파리 자선 바자회 화재 사건에 기반한 드라마다. 당시 사고로 귀족·하인·어린이 126명이 화마(火魔)에 유명을 달리했다. 신분의 존비(尊卑)가 달랐고, 나이도 천양지차였지만 피해자의 성별은 단 하나.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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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바자르의 불꽃`의 시녀 로즈(왼쪽)는 화재로 살아남은 이후에도 귀족 위숑 부인(오른쪽)에 의해 자신의 죽은 딸로 위장해 살아갈 것을 강요당한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
시녀 로즈 삶은 더욱 고단하고 애잔하다. 바자르 화재로 딸을 잃은 귀족 위숑 부인은, 화상에 정신을 잃은 로즈를 자신의 딸로 위장해 납치한다. 딸이 죽은 게 알려지면, 난봉꾼 사위가 재산을 독차지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화마가 할퀸 얼굴로 남편 장을 애타게 찾는 로즈에게 위숑부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말한다. "도망갈테면 가 봐. 남편이 너 같은 괴물과 살고 싶을까. 곧 버림받고 가난에 찌든 채 살게 되겠지". 가난한 여성이 생존 후 마주하는 건 지옥불보다 뜨겁고 거친 프랑스 사회의 민낯이다.
빈틈 없는 연기, 매회 넘치는 반전, 19세기 파리를 완벽히 재현해낸 미장센(시각적 요소)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무엇보다 극을 한차원 더 끌어올리는 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욕망하는 여성이다. "다행히도 우리 법은 남성을 보호하지".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삶과 사랑을 추구하는 여성 주인공은 그 어떤 히어로물 주인공보다 큰 울림을 준다.
실제 사건은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당시 화재 현장에 있던 푸알루에 자작 부인은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창문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왔다. 화마에 휩쓸릴 때까지도 그는 구조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시신이 불에 까맣게 타버린 탓에 고급 악세서리로 신분을 식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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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알루에 생 페리에 자작 부인은 1897년 5월 4일 프랑스 파리 자선 바자회 화재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다 끝내 숨을 거뒀다. 사진은 이탈리아 화가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그의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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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7년 5월 파리 자선 바자회 화재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사망자 대부분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당시 사건을 조명한 신문 지면. |
코로나19로 극장에 가는 발걸음이 망설여지는 요즘, '바자르의 불꽃'으로 여성의 삶을 반추해 보는 건 어떠신지. 마침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1897년 프랑스 여성과, 2020년 대한민국 여성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별점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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