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예나 코미디언 [사진 출처 = 블러디퍼니] |
국내 최초의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Bloody funnyy(블러디 퍼니)'는 작년 10월 코미디언 최정윤 씨의 주도로 꾸려졌다.
크루 이름 블러디 퍼니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영어로 '굉장히 재밌다'는 뜻과, 주기적으로 피를 흘리는 여성들이라는 뜻도 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하고 2주일에 한 번씩 오픈 마이크(누구나 공연을 할 수 있는 마이크 개방 시간)를 열고 있다. 팟캐스트 방송도 한다. 블러디퍼니 멤버 3명에게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의 세계에 관해 물었다.
-'블러디퍼니' 크루를 결성한 계기는.
▶(최정윤) 저는 2018년 2월부터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왔는데 당시엔 스탠드업 코미디 씬이라고 할 만한 곳이 한 군데밖에 없었다. 매주 공연하러 오는 남자분들은 20~30명인데 반해 여자분들은 3~5명 정도로 적더라. 여성의 코미디 장이 제대로 열리면 더 많은 분이 '나도 코미디를 할 수 있겠구나' 용기를 얻고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크루를 결성했다. 그래서 같은 곳에서 공연하던 최예나 씨를 비롯한 5명이 크루를 꾸렸다.
-자주 사용하는 코미디 소재가 있으면 소개해달라.
▶(고은별) 각자 사용하는 소재는 다 다르다. 저는 살아온 이야기보다 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 예를 들어 종교를 주로 다뤘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성차별, 페미니즘 이슈인 것 같다.
(최예나) 저는 일상에서 겪었던 재미있는 일이나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은 이야기를 찾는다. 그런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재미있게 만들어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최정윤) 뉴욕에서 코미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짤 때 자기 감정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 본인만의 소재를 찾으라고 하더라. "나는 ~이럴 때 분노가 치민다", "나는 ~이럴 때 슬프다" 같은 문장을 만들고, 여기에서 출발하면 쉽다. 저는 성교육을 하고 있어서 성교육과 관련된 소재를 많이 쓴다. 또 섹스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민하고, 그런 방향으로 소재를 찾고 있다.
↑ 최정윤 코미디언 [사진 출처 = 블러디퍼니] |
▶(최예나) 저는 호스트(사회자) 역할을 해서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 그런데 제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혼자 서 있으면 사람들이 강연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코미디를 하다 보면 없던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과장할 때도 있는데 관객분들이 (이 장르가 익숙하지 않아서) 진짜 있는 일처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고은별) 코미디에서 다루는 소재와 관련한 어려움도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정치나 다른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아직 사회적 이슈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방법이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코미디언이 무대에서 이런 이슈를 다루면 관객들이 긴장한다. '웃어도 되나?' 하면서 옆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진다.
(최예나) 맞다. 그냥 편하게 나사를 풀고 들어주시면 좋겠다. (웃음)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국내에 많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여성 코미디언으로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나.
▶(최정윤) 다른 코미디 공연에서 남성 코미디언이 대부분이다 보니, 저를 소개할 때 '유일한 여성 코미디언'이라고 하더라. 그러면 제가 코미디언으로서 어떤 사람인지보다 제 성별에 대한 기대가 선행되는 것 같아 부담이 있었다. 블러디퍼니 멤버들은 전부 여자다 보니 그런 부담이 없어 편하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참여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있을 것 같다. 경험자로서 해줄 만한 조언이 있나.
▶(고은별) 블러디퍼니 오픈 마이크에 참여해보시면 좋겠다. 여긴 코미디언과 관객 대부분이 여성이라 남성이 대부분인 다른 코미디 씬보다 편하다. 일단 해보면 감이 잡힐 수도 있다.
(최정윤) 제가 부산 여행을 가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한 여자분이 공연이 끝나고 나서 저에게 오시더니 "블러디퍼니 공연을 보고 저도 코미디를 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씀하셔서 감동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픈 마이크에 와서 '이렇게 하는 거구나. 나도 저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받아 갔으면 좋겠다.
-다른 코미디 장르와 비교한 스탠드업 코미디만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예나 씨는 콩트도 해보셨다고 들었다.
▶(최예나) 콩트는 역사가 오래돼서 그런지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의 외모를 지적하는 등의 여성 혐오적 개그코드가 많은 편이다. 스탠드업에서는 내가 나 자체로 인정받고 나만의 색깔을 띨 수 있어 좋다. 또 일차원적으로 웃기다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려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다.
(고은별) 전 유머가 의사소통의 세련된 도구라고 생각한다. 같은 얘기를 울면서 하면 옆 사람밖에 안 듣겠지만, 웃기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겠나. 또 코미디를 하다보면 내 생각이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다.
(최정윤) 스탠드업 코미디에선 하나의 이야기를 한번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연구하고, 주변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발전시켜 나간다. 그런 점이 '예술' 같다. 무대 위에선 혼자지만,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기면 조크에 대한 피드백도 받고 함께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 고은별 코미디언 [사진 출처 = 블러디퍼니] |
▶(고은별) 블러디퍼니는 공중파와 온라인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중파는 재밌고 프로페셔널 하지만 여성 출연자나 이슈를 다루는 방식이 진부하다. 아직 시청자들의 의식 수준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반면 유튜브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선 여성 서사 관련 논의가 많지만 콘텐츠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투박할 때가 많다. 블러디퍼니는 이 중간지대에 있어서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접근이 공중파보다 앞서 있고, 많은 사람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최정윤) 신선한 재미. 저희는 기존 코미디 문법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판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웃음을 준다. 또 저희의 코미디를 통해 유머의 미래를 보여드리고 싶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유머를 짜나가는지 봐주셨으면 좋겠다.
(최예나) '여자'라는 역할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라는 게 장
-앞으로의 계획은?
▶(고은별) 내년부턴 두 달에 한 번 정도 정기 공연을 할 계획이다. 12월 7일엔 삼각지 '펀타스틱씨어터'에서 첫 공개 공연도 연다.
(최예나) 팟캐스트를 통해 팬층을 쌓아서 더 많은 분들이 공연에 오도록 할 계획이다.
[디지털뉴스국 장수현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