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7년. 조조에게 쫓기던 유비는 세 번이나 제갈량을 찾아간 끝에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깨닫는다. 삼국지의 출발이자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샹양시(襄阳市)에서 시작됐다. 오늘날 샹양시는 2800여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문화도시에서 신재생에너지 자동차를 생산하는 생산 기지로 도약하고 있다. 내년 개통을 앞둔 최대 시속 300km 고속 열차로 베이징까지 걸리는 시간은 3시간으로 대폭 줄어든다. 샹양시는 3선 도시로서 한국과의 문화·경제 교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이 같은 인프라를 바탕으로 중국이 추진 중인 '신 실크로드' 경제권의 중심지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 |
↑ 중국 후베이성 샹양시를 가로지르는 강 한수이. [사진 제공=IAS] |
중국 샹양시는 한국인들에게 낯선 곳이다. 후베이성의 성도인 우한시 다음으로 규모가 큰 샹양시는 600만명이 살고 있는 중소도시인 3선 도시다. 지도상으로는 배꼽인 중국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군(郡) 급 도시지만 인구 규모는 경기도(1320만명·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기준)의 절반 가량에 달한다. 지난해 지역 총생산(GDP)은 1070억위안(한화 18조원)으로 중국 100대 도시 중 50위를 기록했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우선 샹양의 발음은 양양으로, 강원도 양양군과 같다. 실제 양양군과 샹양시는 1998년 자매도시 결연을 맺고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한수이(漢水)도 서울의 한강과 매우 흡사하다. 샹양시는 한수이를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으로 나뉜다. 다만 서울과 달리 강남 지역이 역사·문화 중심지로 올드타운이다. 한수이 강변은 아침 저녁으로 풍경을 즐기며 조깅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한수이 상류 유역에서는 쌀과 밀, 옥수수, 콩 등 농산물을 재배한다. 풍부한 자원과 한수이를 활용해 샹양시는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 수많은 물자와 인력이 오가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최상급 원재료와 한수이의 수원지를 이용한 주류 산업은 샹양시 전체 경제 규모의 20%를 차지할 만큼 활성화돼있다. 대표적인 지역 주류는 곡물과 누룩으로 만든 '황주(黃酒)'다.
관광 자원도 풍부하다. 대표적인 관광지는 정상에 낀 구름이 신비한 모습을 자아내는 무당산(武當山)과 삼고초려의 무대인 고룽중(古隆中)이다. 고융중은 제갈량이 17살 때부터 10여년간 청년기를 보낸 곳이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샹양고성도 볼거리 중 하나다. 세워진 지 2800년이 된 샹양고성의 길이는 7322m에 달한다. 모습은 흡사 한양성곽과 비슷하다. 고성에 오르면 한수이가 한 눈에 펼쳐진다. 한수이는 관우와 조조가 전쟁 중 대치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 |
↑ 제갈량이 청소년기를 보낸 중국 후베이성 고용중(古隆中). [사진 제공=IAS] |
사선륜(谢选伦) 샹양시 문화산업발전촉진회장은 "중국 내에서 한류가 20여년동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인기듯이 한국은 문화 산업이 전체 경제를 견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며 "샹양시의 역사 관광 인프라를 활용해 지역 산업을 견인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 북유럽도 관심…자유무역지구로 외국인 투자 유치
중국 정부는 1992년 샹양시에 국제하이테크산업개발구를 설립했다. 하이테크산업단지와 자동차산업단지로 구성된 이 곳에는 자동차 생산 기업과 방위산업, 전자정보시스템 업체가 입주했다. 샹양시는 국제하이테크산업개발구를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상양시에는 연매출 500만위안(한화 8억원) 이상의 공업기업 약 3000여개가 입주해있다. 외국 기업으로는 일본의 렉서스 생산기지가 있다.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어섰다.
샹양시의 스마트산업 열기는 교육열에서도 느껴진다. 샹양시에서 유아동 자녀를 둔 부모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교육 현장은 로봇을 만들고 실험하는 로보로보다. 로보로보는 한국 교육용 로봇 개발업체로 현지 기업과 손잡고 중국에 진출했다. 샹양시 로보로보의 한 학기 교육비는 8000위안(한화 132만원)으로 일반 직장인의 3달 치 월급과 맞먹는다. 그럼에도 3~10세 학생 수는 1200여명으로 매 수업이 조기 마감된다. 장증창(张增常) 샹양시 발명협회장은 "샹양시 정책에 따라 대학은 물론 중소학교 학생도 매주 2~3시간의 정규 과학수업을 받는다"며 "매년 3~4번씩 개최하는 발명 포럼도 비슷한 규모의 도시들과 비교해 가장 많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샹양시가 주최한 샹양시-북유럽 교류 포럼에는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 기업 100여곳이 참여했다. 샹양시는 자유무역지구를 만들고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우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투자 및 인수합병(M&A)의 경우 외국자본 실제 투자액의 0.4%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또 자동차산업과 관련해서는 토지 양도금과 취득세 등을 면제해준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리네 오스만 스웨덴 3nine 최고경영자(CEO)는 "자사 오일미스트 분리 기술은 자동차 산업 기지가 밀집한 샹양시에서 매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자유무역지구 등을 통해 혜택이 있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 |
↑ 중국 후베이성 샹양시에 위치한 자동차 공장. [사진 제공=IAS] |
내년에 개통되는 고속 열차도 샹양시 개발에 힘을 보탠다. 이 고속 열차는 최대 시속 300km로 베이징까지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 이전에는 베이징에서 샹양시까지 일반 열차로 무려 18시간이 걸렸다. 향후 시속이 600km까지 빨라지면 샹양시에서 라오스와 베트남 등 인근 동남아시아 국가로도 갈 수 있다. 주 리하오(左立浩) 샹양기술대학 교수는 "고속열차가 개통됨으로써 우한 등 인근 대도시하고 접근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고급 인재와 정보를 공유하는 데 더 편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의 교류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달 12~16 샹양시에서 매경미디어그룹과 양양시문화산업촉진회, 양양 방송국, IAS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서울관광재단의 후원으로 열린 '한·중 한강 문화교류 행사'에서는 양국의 음식과 문화, 공연 등을 공유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내년에는 샹양시 측이 서울을 방
임남주(任南柱) 아시아교류센터 사무국장은 "양국이 가까이 만나 교류하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자리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중국의 양양시도 잘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신미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