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Gu is 9(본명 김준구·26)은 북미에서 팬을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는 힙합 가수다. 반주를 최소화한 사운드 위에 그는 시를 낭송하듯 목소리를 살포시 얹는다. 숲이나 주택가를 배경으로 찍은 뮤직비디오에는 요즘 힙합계에 넘쳐나는 돈 자랑이나 자기과시는 없다. "이 노랠 듣고 손가락질할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벌써 보여, 그게 무서워/헌데 평생 숨기면서 사는 건 더 무서워"(시차 중)라며 20대 음악가의 내면을 담담하게 고백할 뿐이다.
서울과 애틀랜타 두 도시에는 그의 음악을 들으려는 청자들이 해가 지날수록 늘고 있으며, 시카고트리뷴과 같은 현지 매체도 하나둘씩 음유시 같은 그의 랩음악 세계를 주목하고 있다.
왜 음악을 시작하게 됐을까.
그는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어야 했던 어린 시절을 언급했다. 태어나서 6년간 미국 메릴랜드에서 살았던 그는 초·중등학교를 한국에서 나온 뒤 다시 미국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음악이 위로가 되기 시작했던 건 미국에 유학생으로 돌아와서였던 거 같아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항상 음악이 있어서 완전히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죠."
양국을 오가며 그는 또래보다 폭넓은 음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의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좋은 음악을 들려주셨어요. 차에서 함께 듣던 음악에는 내털리 콜과 같은 오래된 재즈도 있었고 비틀스, 퀸 같은 록도 있었죠.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은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예요."
그는 음악을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설사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음악만 있으면 타인과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음악은 삶의 방향이 되기도 하고, 혁명의 발판이 되기도 해요. 힙합은 제 정체성 확립에도 큰 도움이 되었고 미국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해줬어요. 세상 어딜 가든지 힙합이 있는 곳이면 인정받을 수 있고 자리를 찾을 수 있어요."
현재는 '슈퍼 로우키(Super Lowkey)'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은 조지아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려서 이민을 떠나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한국인들이다. 세상의 장벽 때문에 소외됐던 사람들끼리 뭉쳐 그 장벽을 허물어보겠다는 게 그들의 목표다.
"이 친구들은 어린 시절 한국인이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미국에선 동양인이라 외국인 취급을 받고, 한국 사회와 문화에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