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제1767호로 지정된 `왕흥사 사리기`의 모습. 우측부터 청동제 사리합, 은제 사리호, 금제 사리병. 이들이 합쳐져 한 몸을 이룬다. [사진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
'성자의 구슬 모양 유골'이라 할 사리를 담아두는 그릇을 사리기라고 일컫는데, 이번 봉안 결정에 따라 무려 1442년 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부여 왕흥사 사리장엄구를 1442년 만에 봉안한다고 27일 밝혔다. 2000년부터 15년간 왕흥사 터 발굴조사를 벌여온 부여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왕흥사 목탑 터에서 사리기를 발견했다. 청동제 사리합, 은제 사리호, 금제 사리병이 차례대로 3겹으로 겹쳐져 있는 모습으로, 보물 제1767호로 지정됐다.
망자가 된 아들을 기리는 백제 왕의 애달픈 마음이 왕흥사 사리기를 빚었다. 백제 창(昌)왕은 아들의 죽음을 기리며 절을 세운다. 창은 사리기 2매를 묻으려 했으나 "신의 조화"로 3매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청동제 사리합에 새겨진 문구가 그렇다.
'정유년 2월 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찰(刹·절)을 세우는데 사리 2매를 묻으려 하자 신의 조화로 사리가 3매가 되었다(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爲亡王子立刹本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 명문에는 사리기에 사리를 넣었다고 하지만,
부여박물관 3층에선 사리기를 포함한 사리장엄구 9493점을 이날부터 전시·공개했다. 새로 제작한 왕흥사 사리기 독립진열장은 전면 저반사 유리를 사용해 반사현상이 없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백제문화의 상징이자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리기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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