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사실은 아무 발에나 비켜 맞는다고 골인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의 꽈당 동영상 속 노래가 다시 찾아 듣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걸그룹 무대 사고' 에피소드 정도로 분류되는 데 그쳤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수차례 넘어지는 와중에도 끝내 완수한 무대 역시 여타 걸그룹에게서 볼 수 없었던 파워풀한 '칼군무'로 꽉 채워져 시청자 눈을 사로잡았다. 신인으로서 당황할 법한 사고를 노련하게 넘길 수 있었던 데에는 평균 3~4년에 가까운 연습생 시절이 바탕이 됐다. 최근 낸 앨범으로 아이튠스 9개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해외시장으로까지 영토를 확장 중인 걸그룹 여자친구를 S(강점) W(약점) A(기획사) G(목표)로 분석해봤다.
↑ 여자친구는 2015년 9월 어느 비가 오는 날 인제스피디움에서 펼쳐진 무대에서 8번이나 넘어지면서도 공연을 완수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사진=유튜브 캡처 |
S(강점): 노래마다 선명한 '여자친구' 각인
여자친구 노래엔 또렷한 각인이 있다. 누가 불렀는지 모르는 채 들어도 '이건 여자친구 노래'라고 확신할 만한 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특징 중 하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삽입곡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이다. 김반야 음악평론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곡을 빼닮은 직관적인 노래, '깨끗하고 건강한 소녀' 라는 분명한 콘셉트로 다른 여자 아이돌과 차별화했다"고 평가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 같은 노래는 여자친구의 이런 강점이 가장 잘 드러난 곡들이다. 애니메이션 삽입곡 느낌을 넘어서 그 자체로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꽉 짜인 구성으로 청자를 매료시킨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선율을 강조한 직관적 매력의 노래들"을 여자친구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디지털 음원 재생 서비스 지니뮤직에 이들의 대표곡 9곡에 대한 차트 순위 분석을 의뢰한 결과, 데뷔곡 '유리구슬'부터 최신 앨범 타이틀곡 '해야'까지 실시간 차트 최고 순위는 모두 10위권 안에 있었다. 이 정도로 고른 차트 순위는 대형 기획사 아이돌 그룹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기록이다. 그만큼 이들의 노래는 확실한 타깃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대중성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퍼포먼스 역시 범람하는 걸그룹 속에서 이들을 구분 짓는다. 보이그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칼군무'를 역동적으로 소화하면서도 보컬이 흔들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걸그룹 안무가 귀여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여자친구의 이런 전략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걸그룹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안무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곡별 안무는 멤버들의 안무 실력을 돋보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아울러 '꽈당 동영상' 사례처럼 무대마다 전력투구하는 모습도 대중에게 '진정성'으로 다가서고 있다.
W(약점): 개성과 식상함은 종이 한 장 차이
역설적이게도 여자친구의 약점 또한 개성에서 나온다. '누가 들어도 여자친구 노래'임을 보여주는 요소는 '이번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감성?'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2000년대 초 라틴 댄스 곡 '흔들린 우정'으로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홍경민이 이후 발표한 라틴 노래들에서는 식상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황선업 평론가는 "비슷한 노선 유지에 따라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오마주의 한계'(김반야 평론가)로도 볼 수 있다. 여자친구가 처음 나왔을 때, 소녀시대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소속사 쏘스뮤직의 소성진 대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소녀시대와 같은 청순함을 찾는 수요를 공략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김반야 평론가는 "데뷔 초부터 이들이 부른 '유리구슬'을 '다시 만난 구슬'이라고 할 정도로 소녀시대 오마주가 강했다"며 "가사나 제목의 일본어 번역투, 격정적인 현악기 사용과 일렉트로닉 기타 편곡은 J팝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콘셉트 반복이 아닌 노래의 다양성 부족이 문제라는 진단도 있다. 정병욱 평론가는 "의외로 그룹의 한결같은 콘셉트와 이미지의 피로감 문제는 크지 않다"며 "오히려 콘셉트를 뒷받침할 노래의 강점이나 다양성이 큰 문제"라고 했다.
A(기획사): of·by·for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성공은 중소기획사에서 이뤄졌기에 더 빛난다. SM엔터테인먼트 출신인 소성진 쏘스뮤직 대표는 보아, 신화 등 톱스타의 매니저로 활동한 경험을 한껏 살려 대박 신화를 일궈냈다. '대표의 SM표 실무 노하우'(김반야 평론가)를 바탕으로 쏘스뮤직은 '곡을 보는 선구안'(황선업 평론가)을 뽐냈으며, '중소기획사로서 여자친구를 성공시킨 자신감'(정병욱 평론가)을 통해 뚝심 있는 기획을 지속하고 있다.
다만, 소속사에서 현재 활동 중인 팀이 여자친구밖에 없다는 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여자친구 한 팀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그만큼 팀을 혹사시킬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황선업 평론가는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를 위한, 여자친구에 의한 기획사"라는 말로 이 회사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G(목표): 다양한 슈팅 시도해볼 때
소속사에서 이미지나 콘셉트 변화를 꾀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2017년 도발적인 숙녀로 변신을 시도했던 '핑거팁(Fingertip)'이 차트에서 다소 미지근한 반응으로 이어진 뒤 기존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인상이다. 이런 선택이 현재로서는 안전하게 보이지만 운신의 폭을 점점 좁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보다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황선업 평론가는 "다소 리스크가 있겠지만, '핑거팁'과 같은 변신의 지속적 시도가 결과적으로는 롱런의 단초를 마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리스크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자친구는 데뷔 초 빗맞은 공을 골인으로 만들며 이미 저력을 입증한 그룹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선수가 여러 폼으로 슈팅을 시도한다면 점점 까다로워지는 K팝 청자들에게 긴장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반야 평론가는 "'학교 시리즈'도 끝났고 이미 자가 복제를 많이 한 상태여서 더 이상 소녀로 남아 있기 힘들어 보인다"며 "청순·건강을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소녀'를 지나 '레이디'로의 콘셉트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한 계단 더 뛰어오르기 위한 멤버들의 의지는 충만한 상태다. 국내 팬 사이에서 '갓자친구'(신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갓(god)과 여자친구의 합성어)로 추앙받는 이들은 지난해 일본 데뷔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글로벌 팬덤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멤버 은하는 "새 앨범은 '해야’가 타이틀곡인 만큼 '올해는 여자친구의 해야’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박창영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