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난 배두나(40)가 말했다. 인터뷰가 30분쯤 진행됐을 때 나온 발언이었는데, 이질감이 없지 않았다. 이날 그가 한 답변에선 줄곧 개인주의자 배두나의 성격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을 챙겨주는 게 불편해서 때때로 매니저 없이 해외 출장을 나가고, 다수 해외 작품을 경험했지만 국위선양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는 배두나다. 그런데 "시술을 받으면 안 된다"의 주어로 1인칭 대명사 '나' 대신 '배우'라는 보통명사를 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는 민낯에서 나오는 힘을 믿거든요. 두꺼운 메이크업을 연기력으로 뚫을 자신이 없어요. 사람이 흥분하면 나오는 얼굴색, 그런 힘이 있거든요. 그러려면 메이크업이 아주 얇아야 해요. '터널' 때도 그랬고 감정 신(scene·장면)은 그런 것에 도움을 많이 받아요."
그러니깐 그의 입에서 나온 '배우'란 연기자 무리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 배우상(像)을 밝힌 것이다. 배두나는 1998년 KBS2 미니시리즈 '천사의 키스'로 연기에 발을 들인 이후 좋은 배우란 무엇인지 20년 넘게 고민했다. 그간 출연한 영화, 드라마, 연극은 40편을 훌쩍 넘는다.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었던 나머지 일 중독이 된 건 아닐까.
"언제까지 사람들이 날 불러줄까 싶어서 열심히 해요. 운동 중독자는 운동을 안 하면 되게 불안하대요. 저는 연기를 안 하고 있으면 '이래도 되나' 싶어요."
최근 넷플릭스 좀비물 '킹덤'에 출연하고는 연기력 논란이 생겼다. 배두나가 맡은 '서비'는 조선시대 의녀인데 사극 말투를 안 써서 어색하게 들린다는 지적이다. 정작 그는 담담했다. 대본과 한판 싸움을 벌인 뒤 해석해낸 캐릭터를 충실히 연기했다는 데 자신 있기 때문이다.
"서비는 원래 고아였어요. 의녀가 된 뒤에는 산속에서 한평생 살았거든요. 사회성도 화술도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더라고요. 어리숙한 서비로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한 가지에 몰입한 사람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2006년 '두나's 런던놀이'를 시작으로 낸 사진집 시리즈로 호평을 받았지만 3편째 내고 그만뒀다. "나의 백그라운드 스토리가 많이 알려지면 관객이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공기인형'을 비롯해 외국 작품에도 많이 출연했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최초의 한국 모델일 정도로 해외 인지도가 높지만 외국에 진출하겠다고 덤벼든 적은 한번도 없단다. 스스로는 어떤 작품에서든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했다. 흥행도 안 된 초기 한국 작품을 보고 외국 감독들이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