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카소 `무용` [사진제공 = 서울센터뮤지엄] |
1907년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틀리에 '바토-라부아르'. 목조로 지은 이 허름한 건물에서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다.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나체 여인들의 몸과 얼굴을 뒤틀고 커튼과 뒤섞은 이 그림은 입체파(큐비즘)의 서막을 열었다. 화면의 조화를 추구한 회화 전통을 허물고 대상을 해체한 후 기하학적으로 재조합해 새로운 미술 언어를 창조했다.
조르주 브라크(1882~1963)도 이 그림에 자극을 받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 '대욕녀'를 그렸다. 여러 시선으로 바라본 사물을 한 화면에 동시에 표현했다. 산업의 발달로 문호가 개방돼 동양과 서양, 원시 사회와 산업 사회가 교류하던 20세기초는 하나의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요구하던 시대였다. 브라크는 피카소의 그늘에 가리기는 했지만 알파벳과 숫자를 그림에 그려넣고, 종이 조각을 캔버스에 붙이는 등 실험정신이 넘쳤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이끈 입체파는 21세기 현대미술 토대를 마련했다. 초현실주의, 추상, 미니멀리즘, 팝아트, 개념미술 등의 뿌리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에서 20세기 미술 혁명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국내 기획사 서울센터뮤지엄이 파리시립근대미술관과 이스라엘국립미술관 소장품 90여점으로 구성한 전시다.
입체파 선구자인 피카소 작품으로는 유화 '남자의 두상'(1912년), 모래와 유화 물감으로 그린 '르 비유 마르크 술병'(1914년), 판지 위에 과슈(수채화 물감에 고무를 섞어 그리는 기법)로 완성한 '구성'(1923년), 1925년 유화를 1975년 색실로 짠 태피스트리 '무용' 등 4점이 걸려 있다.
'남자의 두상'은 분석적 입체파 특징인 신비성과 난해성이 극에 달한 작품이다. 파이프와 얼굴 흔적이 보일 뿐,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다. '르 비유 마르크 술병'에선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 어둡고 암울한 단색 위주에서 벗어나 빨강, 보라, 녹색 등을 사용해 화면이 한결 밝아졌다. 딱딱한 직선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이 주로 보인다. '무용'은 피카소 작품 중에서 드물게 초현실주의 화풍을 띠고 있다. 세 명의 인체를 극단적으로 변형했는데 첫번째 부인 올가와 결혼 생활이 파경에 다다랐을 때 그렸다. 긴장감 속에 고통과 환희가 결합된 그림 중앙에 수직으로 팔을 뻗은 누드는 마치 십자가 형상 같다.
브라크 작품으로는 유화 '여인의 두상'(1909년)·'유리잔'(1911년)·'파이프가 있는 정물'(1914년) 등 6점이 서울에 왔다. '여인의 두상'은 기하학 정신과 감각적인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적갈색과 회색을 집중적으로 사용했으며 형태가 그림 속에 스며들었다.
두 사람 외에도 기하학적 입체파 화가 페르낭 레제(1881~1955), 입체파를 발전시켜 화려한 색채 율동을 보여주는 오르피즘 작가 로베르 들로네(1885~1941)와 소니아 들로네(1885~1979) 부부 등 화가 20여명의 명화들로 미술사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들로네 부부가 1938년 파리국제전람회에 출품한 높이 5m 초대형 작품들이 이번 전시장을 장식했다.
입체파의 기원이 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1839~1906) 유화 '햇살을 마주 본 레스타크의 아침'(1882~1883년), '물가의 저택'(1890년)도 이스라엘국립미술관에서 대여해왔다. 세잔은 "자연의 모든 것은 원통, 원추,
단순하지만 특징 만을 정확하게 강조해 입체파에 영향을 준 아프리카 인체 조각과 가면도 전시돼 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