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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호영 기자 |
배우 서현우(36)의 청춘기도 마찬가지였다. 고교시절, 배우라는 꿈을 잠시 머금었던 그다. 하지만 그 나이대가 으레 그렇듯, 꿈의 실체란 더없이 모호했다. 부모에게 알리려니 두려웠고, 실천하려니 용기는 모자랐다. 가족 몰래 연극 동아리를 했으나, 이 또한 직업으로까지 생각해본 건 아니다. 그랬다면 일반대 영문학과를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20대의 첫 해는 방황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영어라도 잘 해보려 간 것이나 열의부터 미약했다. 궁색한 자기변명이자 면피성 둘러대기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군입대의 부담마저 서서히 어깨를 짓눌렀으니, 무기력의 나날은 끝 모를 듯 이어지는 듯했다. 그렇다고 잉여인간은 되기 싫었으므로, 아르바이트라도 뛰기로 한 그다. 대학로 바텐더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참, 사람 사는 일은 모르는 일인지라, 이 5개월여 기간은 그가 본격적인 '배우에의 꿈'을 키운 일대 계기가 된다.
"밤마다 대학로 연극인들이 제가 일하는 바에 오셨어요. 삼촌뻘 되는 분들이셨는데 이 분들을 매일 밤 굉장히 진지하게 토론을 하시더군요.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같은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 대사들을 줄줄이 읊으시면서요. 햄릿은 이런 심경이 아니었을까, 오셀로의 분노는 이렇지 않았을까 하며. 티 안나게 매일 밤 이분들을 관찰했어요. 이 같은 표현이 괜찮을 지는 모르겠는데, 마치 '어른들의 소꿉장난' 같았달까요. 멋있었어요. 그리고 궁금했죠. 무엇이 저들을 이토록 빠져들게 한 걸까. 진실로 배우가 돼야겠다는 결심이 선 건 이때부터에요."
한 지인에게서 "한예종 연기과를 가라"는 말을 들은 것도 그 즈음이다. 목표는 섰고 길은 이제 열렸으므로, 더는 고민할 게 없었다. 1년여 간 다닌 대학은 미련 없이 그만뒀다. 곧바로 한예종 연기과 입시에 도전했고, 불철주야 독학해 한 번에 합격한다.
동기들보다 2년가량 늦은 것쯤 문제될 게 아니었다. 의지와 집념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었으므로. 실제로 첫 학기만 빼면 매학기 전액 장학금을 탄 그다. 그만큼 치열했다. 그리고 열성적이었다. 졸업 후 5년여간 이어진 무명생활 또한 마찬가지. 매일 같이 영화사를 찾아 프로필을 돌렸고, 오디션이라는 오디션은 빠짐 없이 나갔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이르렀으니 서현우는 현재 영화계가 가장 많이 찾는 배우 중 하나다.
올해 출연작만 모두 9편(미개봉작 포함)이다. '1급 기밀'의 차우진, '사라진 밤'의 동구, '7년의 밤'의 이 형사,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부정, '독전'의 정일, '너와 극장에서'의 정우 등 극중 비중을 차치하고서 그는 주요 영화마다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가을엔 세간의 화제를 모은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의 담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의 사연 많은 탈북녀(이나영) 애인으로 출연했다.
여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일까. 서현우를 만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락할 때마다 그는 번번이 촬영 중이었고, 한 작품이 끝나면 곧바로 새 작품을 찍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번 만남은 인터뷰를 처음 요청한 지 6개월여만에 타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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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서현우는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 탈북녀(이나영)의 동거남을 연기했다. /사진제공=콘텐츠판다 |
-드디어 만났네요. 근래 대단히 바빠 보이세요. 결혼 같은 건 생각도 못 하실 것 같은데.
▷아직은 일에 더 전념하고 싶어요. 요새 촬영 일정이 많긴 몰려 있긴 한데, 피로하다기보단 즐거워요.
-필모그래피 보며 놀랐어요. 어지간한 영화엔 다 나오셨네 싶어서. '1987' '택시운전사' '터널' '베테랑' '끝까지 간다' '관상' 등에서도 출연하셨죠. 필모그래피를 천천히 짚어보며 느끼는 건 극중 비중 같은 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느낌이 짙다는 겁니다.
▷어떤 배역으로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출연하는 가에 괘념치 않아요. 요즘 느끼는 건 작품이 늘다보니 하나둘 아는 선후배 배우들, 스태프 분들을 현장에서 다시 마주할 때가 많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소속감이 참 좋아요. '1987'은 하정우 선배와 목욕탕 신에서 잠시 단역(동료 검사 역)으로 나왔죠. 무대미술을 전공한 한예종 동기 형이 이 영화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어요. 오랜만에 재회하니 어찌나 반갑던지. 요새 이런 생각을 해요. 아, 내가 이 영화라는 일에, 배우라는 일에 귀속되어가고 있구나, 이게 온전히 내 직업이 되어가고 있구나.
-필모그래피가 참 균형잡혀 있어요. 극중 비중만이 아니라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장편영화와 단편영화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하고 계시더군요.
▷다 똑같은 영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철저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거고요. 하고 싶은 역할, 만나고 싶은 사건과 상황, 그런 것들이 있다면 장편이든 단편이든, 규모로 보았을 때 독립영화이건 상업영화이건 다 경험적으로 소중하다고 봐요.
-그 하고 싶은 것의 기준이라는 게 늘 일정하지는 않을 텐데요.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
▷그렇죠, 상황에 따라 다르죠. 이번에 무거운 역할을 했으면 다음에는 밸런스를 주고자 가벼운 역할을 해보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이게 좀 자생적으로 판단이 된달까.
-특정 캐릭터에 고정되지 않으려는 나름의 의지도 반영돼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캐릭터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그런 의지랄까.
▷배우들 전체가 그렇다고 볼 순 없겠지만 대부분 본인이 어떤 걸 잘 하는지 알게 돼요. 내가 잘 하는 연기가 어떤 건지를요. 그래서 전혀 다른 질감의 역할을 맡게 되면 겁을 내게 마련이고요. 근데 단편이든 장편이든, 독립이든 상업이든 폭넓게 경험을 가져가면 그런 겁을 좀 상실하게 된달까요. 제 나름대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방법이지 않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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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호영 기자 |
올해 필모그래피만 봐도 이 점은 분명해진다. 9편의 작품 중 장편 상업영화는 4편('독전' '7년의 밤' '사라진 밤' '1급 기밀')이다. 독립영화는 4편('뷰티풀 데이즈' '죄 많은 소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너와 극장에서')이며, 단편은 1편('종말의 주행자'). 지난해 출연작인 5편도 마찬가지인데, 장편 상업영화가 3편('1987' '침묵' '택시운전사'), 독립영화가 1편('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 단편영화가 1편('백천')이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자기 관리에 철저한 배우인지 짐작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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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서현우는 영화 `죄 많은 소녀`에서 담임 선생님을 연기했다. /사진=CGV 아트하우스 |
-최근 개봉한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 얘기부터 해보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 올해의 배우상(전여빈) 등을 받으며 호평받았어요. 주인공 영희(전여빈)의 담임 선생으로 출연하셨는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영화인가요.
▷김의석 감독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평소 제 작품들을 보시며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고요. 일전에 서울 독립영화제에 지원을 받으려고 단편 작업을 했던 적이 있어요. 지원을 받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차원에서 형슬우 감독과 트레일러 영상을 하나 찍었는데요(유튜브에서 '서현우'를 치면 맨 상단에 나온다). 가난한 배우가 연기학원 강사를 하면서 학원을 홍보하는 내용이에요. 이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좀 돌면서 김 감독이 보신거죠. '죄 많은 소녀' 담임의 이미지가 확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극중 담임은 뭐랄까, 10대 여고생들의 위치와 기성 어른들의 위치 한 가운데서 어정쩡하게 놓인 느낌인데요. 악한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조할 수도 없는 애매한 포지션에 서 있죠.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어떻게 다가오던가요.
▷막연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처럼 헤비한 소재에 어떻게 하면 이 담임이라는 인물의 전형성을 탈피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어찌보면 나쁜 어른 같죠. 그런데 저는 평소 작품 활동을 할 때 모토로 삼는 게 있어요. 타당성을 잃지 않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 모든 역할이 날 때부터 악역은 없다, 날 때부터 그런 정해진 역할은 없다는 거. 이 담임이 왜 이렇게 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의문이 들었어요. 감독님과 그것부터 파헤치기 시작했고 서로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나름의 타당함을 찾아갔죠.
-그 타당함에 대해 부연해줄 수 있나요.
▷자기 반 학생이 실종되고 결국엔 사망했다는 게 알려져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담임의 형태는 이런 것일 테죠. 같이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애도하는 모습이요. 근데 시나리오에서는 그걸 극복했다고 보고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려는 모습이 강하거든요. 어떻게든 빨리 수습하려 해요. 제가 준비할 부분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빨리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는가였어요. 슬픔을 느낄 새 없이 수습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데서 시작해야 했고, 그게 담임의 전사로도 이어진다고 봤어요.
-그 전사는 배우님이 상상한 영역이죠?
▷네, 예컨대 교장을 비롯한 윗분들의 압박과 함께 담임 개인이 가진 가정적인 문제 등이 있지 않을까 하고요. 신혼의 남성인데 2세 계획이 있는 와중이지는 않았을까 하며 그만의 전사를 타당하게 구축하려 노력을 했고, 학부모들과 관계랄까, 이 조그만 사회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부분들, 그걸 유지해야만 하는 타당성을 찾아나갔어요. 그러면서 담임을 완전히 관습화된 기성 세계와 젊은 세대 중간에 놓인 사람처럼 보게 되더군요. 앞선 말씀처럼 기성화된 세대와 기성화되지 않은 세대의 중간에 놓여 있다가 전자의 어른들 세계로 입문하고 있는, 말하자면 '애기 어른'으로요.
곱씹을수록 상당히 이성적이고 냉철한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질문이 들어오면 섣불리 즉답하지 않았다. 몇 초간 고민한 다음 한올 한올 제 생각을 펼쳐놓는 식이었다. 그렇게 펼쳐놓는 답변의 전모란 그 자체로 매끄럽고 정갈한 문장이 되어 인터뷰어에게 전해졌다. 그는 "되도록이면 한 번은 더 생각하고 대답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야 오해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말씀하신 그 타당성을 찾는 훈련은 언제부터 해온 건가요.
▷학교(한예종 연기과)에서 교육받은 부분도 있지만, 계속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좀 생뚱맞은 얘기일 수 있는데…. 타당함을 찾으면 저는 감정으로 연기하려 들지 않는 편이에요.
-감정으로 연기를 하지 않는다라.
▷감정이 아닌 철저한 이성과 과학적인 행동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감정과 감수성을 지니고서 작품을 마주해야 하는 건 오히려 관객이라고 보고요. 배우는 철저히 자신의 인물을 객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는 행동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고요. 많은 배우가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신을 하고 나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라는 표현을 하죠. 몰입에서 깨어나오지 못한다는 건데요. 저는 그게 뭐랄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이를 테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슬픈 비고를 들은 상황이라고 해봐요. 그런데 당장 연기해야 하는 게 즐거워해야 하는 장면이에요. 그럼 과연 그 연기를 해냈을 때 진실한 감정으로 해낸 것일지 의구심이 안 들겠어요?
-일종의 딜레마네요.
▷그렇죠, 마찬가지로 철저히 슬픈 장면을 찍고 곧장 기쁜 장면을 찍어야 한다고 쳐봐요. 저는 슬픈 장면에 도취돼서 아직 헤어나오지 않은 배우는 이어지는 장면을 제대로 연기할 수 없을 거라고 봐요. 그런 점에서 배우가 감정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보는 거죠. 감정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언제 찾아오는지도 잘 모르는 거예요. 그 크기와 형태도 명확하지 않죠. 그래서 저는 한 인물에 접근할 때 굉장히 실리적으로 해당 신에 맞게끔 정확히 표현해내려고 고심해요. 명확하지 않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내가 마주한 사건에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로 접근하는 거죠. 감정적인 것보다는 정확한 행동으로 표현한다는 거죠. 그 행동이라 하면 대사일 수도, 신체적인 움직임일 수도, 그냥 시선일 수도, 호흡일 수도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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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호영 기자 |
서현우는 1983년 부산 태생이다. 초·중교를 통영에서 나왔고, 한일고에 들어가고부터 충남 공주로 가 기숙생활을 했다. 알 사람은 다 알지만, 한일고는 지역 수재들이 가는 지역 특목고 중 한 곳. 후배로는 배우 박정민, 조현철 등이 있다. 성격이 활달해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전교회장과 반장, 부반장은 대개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특목고에 가고부터 공부에 대한 흥미를 급속히 잃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평균 90점이 넘어도 반 전체 45명 중 39등을 하는 곳이에요. '올백'이 한 반에 세 명씩 나오죠. 이미 고1 때 고3 과정을 '마스터'할 정도고요. 공부할 맛이 나겠어요?" 그러다 관심사를 옮긴 게 연극이다.
-연극은 어떻게 만난 건가요?
▷공부에 흥미를 잃은 채로 방황하다 2학년 때 연극반을 들어갔어요. 그게 일종의 '씨앗'이 된 거죠. 계기는 1학년 연말 축제였어요. 연극반 연극 발표를 보게 됐는데, 그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연극이었죠. 와, 내가 평소 알던 사람들이 상상의 공간 위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사를 내뱉고 있어요. 그 광경이 굉장히 신기하고 매력적이더라고요. 내가 알던 동기와 선배가 그 순간 만큼은 다른 세계 속 사람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게 당시 문학반 선생님이 극본을 쓴 창작극이었는데요. 제가 연극반에 들어가고 그 분 밑에서 지도받으며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부모님 몰래 하던 거였고, 이걸 직업으로 삼자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 했죠. 그럴 용기도 없었고.
-그래서 일반대 영문학과에 들어간 거군요.
▷그것도 겨우 공부해서 억지로 들어간 거였어요. 지원 이유도 단순했죠. 영어라도 잘해야 할 거 같아서였으니. 아무튼 그렇게 들어갔는데, 반절은 긴 기간 영미권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었어요. 아, 여기도 내 길이 아닌 것 같고(웃음). 그러다 1학년 마치고 스물한 살 무렵인가요. 쉬면서 대학로에서 바텐더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그곳에 매일 오는 연극인들을 염탐하면서 배우 꿈을 본격적으로 키우게 됐고요. 때마침 오래간 만에 전화한 고교 문학반 선생님이 해준 말씀이 결정타로 작용하기도 했고.
-결정타라면?
▷고교 때 연극반 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 전화드렸다고 하니 학교를 그만뒀다고 하시더군요. 한예종 대학원에 진학해 아동청소년 연기과에서 공부하고 계신대요. 선생님이 저랑 7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분인데요. 그냥 허심탄회하게 다 얘기했어요. 그간에 홀로 해오던 이런저런 고민들을요. 이를 가만히 듣던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우리 학교 시험 봐볼래?" 돌이켜보면 어떤 손길 같은 게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음의 준비는 돼 있는데 실천은 정작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날 전화하고 대학은 바로 자퇴했죠.
-한예종 입시 준비는 어땠어요?
▷결심은 굳혔는데 일단 너무 막연했고…. 연기학원에 등록했다가 딱 한 달만 듣고 나왔어요. 안 되겠더라고요. 당시 2003년인데 수강료가 첫 달에 85만원이에요. 근데 생각보다 제가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수강생이 반에 50명이 넘었었죠. 일주일에 3번 수업인데, 한 명씩 나가 발표하고 강사한테 지도 받고 내려오는 식이었어요. 나머지는 그걸 보고 있고요. 주에 한 번 앞에서 지도를 받을까 말까한 거예요. 아니다 싶어 그냥 내 방식대로 독학하자고 결심을 굳혔죠.
정말이지 독(毒)하게 독학(獨學)했다. 국민대 인근에 사는 자취생이었기에 동네 비디오 가게를 내 집처럼 들락거렸다. 하루에 세 편씩 빌려보는 것은 기본. 초집중하며 보고선 좋다 싶은 연기는 있는 그대로 따라했다. 그러다 안 되면 전문 서적들에 SOS를 치는 식이다. 서현우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 신세계를 마주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평소에 영화를 즐겨 봤나요.
▷전혀요. 극장도 안 갔어요. 아니 못 갔죠. 늘 봐야 하는 게 문제집, 교과서였어요. 그래서인지 두 달 가량 입시 준비할 때 전혀 안 힘들었어요. 하루에 3~4편씩 영화 보는데 그게 마치 신문물처럼 느껴졌달까요. 그 두근거림과 설렘, 긴장 같은 것들이 대단했어요. 친구들과 부모님 몰래 무언가 준비한다는 그 '비밀스러움'도 재밌었고.
-근데, 자취방에서 연기 연습이 가능해요?
▷원룸텔이었어요. 샤워실은 공동이고 세면대는 하나뿐이고요. 책상, 침대, 옷장이 다예요. 소음이 문제 될 수 있어서 이불 뒤집어쓰고도 했고, 그러다 안 되겠으면 야심한 밤에 태권도장을 갔어요. 친한 사범님께 부탁드리고 야밤에 도장에서 마음껏 연습했죠.
-그러고 두어 달 만에 붙은 것도 대단한데요.
▷설레는 마음으로 입시 원서를 내고 제가 고교 때 태권도를 배운지라 특기로 그걸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죠. 1차 시험이 즉흥 대사랑 준비해간 대사를 하는 건데 2차 대상자 명단에 포함돼 있더라고요. 최종적으로 27명이 뽑혔는데 전체 지원자가 4000명이었다고 해요. 3차는 특정 상황이 제시되고 인물들의 대화를 본 다음 이게 어떤 상황인지 등을 상상해서 1800자로 써보는 거였어요. 그게 스물두 살 때 일이에요.
-부모님은 뭐라셨나요?
▷두 분 다 충격받으셨어요. "네가 겨우 하고 싶은 게 '딴따라'였냐"고 하셨으니. 그래서 설득의 기술을 꺼내들었죠(웃음).
-설득의 기술이라면?
▷연극영화과 교수할 거라고요. 교수는 안정적인 직업이니까 허락해주실 것 같았거든요. 정말로 효과가 있었고요.
-남들보다 2년 늦게 들어간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처음엔 패닉이었어요. 예고 출신 동기가 많았어요. 이 친구들은 거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 보였어요. 반면 저는 타인들 앞에서 저의 어떤 면을 꺼내는 것 자체가 서툴렀고요. 제가 이들보다 잘할 수 있는 건 오롯이 노트 필기하는 것뿐이었어요. 파릇파릇한 예고 출신 친구들이 봤을 땐 그런 제가 신기했나봐요.
한예종 재학 시절 그는 '박사'로 불렸다. 동기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한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농을 던지기도 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머리로 이해하면 될 것을, 뭐 그리 미련하게 받아쓰느냐." 하지만 '필기왕' 서현우의 진가는 1학년 2학기부터 빛을 발한다. 백도화지 상태였던 게 도리어 강점이었다. 흡수율이 남달랐던 것이다. 특목고 출신다운 빠릿한 두뇌도 한몫 했다. 서현우는 "첫 학기가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해결하는 기간이었다면 다음 학기부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이를 통해 무얼 정립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배우는 기간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첫 학기를 빼면 전액 장학금은 전부 그의 차지였다.
-1등만 했다는 거네요.
▷입학 전에 부모님께 호언장담했어요. "등록금 안 주셔도 된다"고요. 정말 필사적이었어요. 동기들이 저더러 "지독한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공부 잘 한다고 연기 잘하는 건 아니다"며 비웃기도 했고(웃음) .
-군대는 언제 다녀왔나요.
▷2년 다니고 바로요. 돌아와서는 이제훈, 박정민이랑 같이 학교 다녔고, 졸업은 동갑내기 선배 김동욱이랑 같이 했고요.
-부모님이 아들이 배우가 되려 한다는 걸 인지하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전역하고 공연 무대에 오르고 부터인 것 같아요. 아들이 자꾸 무대에 오르니까 서서히 눈치 채시는 거죠.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시며.
-첫 공연 보고는 뭐라셨나요?
▷안톤 체호프의 희비극 중에 '반야삼촌'이라고 있어요. 여기서 주인공 바냐 아저씨를 제가 연기했어요. 당시 나이보다 스무살 많은 중년 캐릭터였는데, 이 공연을 초대해 보여드렸죠. 어머니께선 끝나고 우시더군요. 아버지는 보수적인 분임에도 "잘 봤다"고 의외로 좋아해주셨고요. 어머니가 우셨던 건 감동받으셨기 때문이에요. "막연히 하고 싶어한다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로 열정적이었구나" 하시며. 공연 중간에 객석에 있는 부모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어요.
-떨리셨겠는데요.
▷일부로 안 피했어요. 꿋꿋이 부모님을 쳐다보고 연기했죠. 그 순간 무언의 교감이 오간 것 같아요. 아들이 이만큼 잘 해내고 싶어한다는 걸 그 순간 느끼시지 않았을까요.
이제 남은 건 직진이었다. 손수 만든 프로필들을 들고 매일 같이 영화사를 누볐다. 연기엔 자신이 있었으므로, 필요한 건 근성, 그리고 집념이었다. 근자필성(勤者必成)이라고, 발품을 팔 수록 기회는 왔다. 그는 "부지런함엔 장사가 없다"고 했다.
-프로필 돌리던 당시 기억나는 일화 있어요?
▷강남, 상암동 등 서른 군데 영화사를 매일 같이 누볐어요. 이게 또 매일 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겨요. 조감독님 명함도 받아오게 되고요. 거기에 무슨 영화 준비하시는지를 메모했어요. 그러곤 조심스럽게 피드백 문자도 보내고 그랬죠. 오디션은 언제 하는지, 어떤 배역 구하고 계신지 등. 그런 식으로 자체 매니지먼트를 했어요.
-자기 관리엔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아요. 누가 이끌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척척 해내는 느낌이랄까.
▷아쉽게 출연은 못했지만 '변호인'(2013) 오디션을 일곱 번을 찾아갔었어요. 초반엔 제 이름도 모르고 며칠 전에 왔는지도 모르는데, 일곱 번을 오니 이름을 기억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인사했어요. "발로 뛰는 배우 서현우입니다."그러면 조감독님들이 "어, 그러시냐"고 반겨요. 그리고 예전엔 제나름 준비한다고 박카스 한 상자 들고 가서 돌렸어요. "고생 많으십니다"하며 드리는 식인데, 어느 조감독님이 그러시데요. "왜 배우가 이런 것까지 주고 그러세요. 이거 현우 씨 드세요. 고생하시는 건 배우분이신 거 같은데." 그날은 괜스레 밖에 나와선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런데 곧이어 찾아간 다른 조감독님은 그걸 바로 받으시며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그 당시엔 정말 자조에 빠지고 할 겨를이 없었어요.
- 현재 배우님은 충무로가 가장 많이 찾는 배우님 중 한 분이세요. 스스로를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세요?
▷(한참 고민하며) 어떤 배우인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이 연기라는 게 하면 할 수록 더 재밌어요. 그간 욕심도 많이 내고, 작품도 정말 쉬지 않고 해왔는데, 이제는 좀더 명민해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요즘엔 어떤 배우가 돼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저를 돌아보고 있어요. 그 답을 찾는 건 평생 안고가야 할 숙제일 테죠. 그래도 분명한 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듯, 연기 활동을 하면서 제가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 느낌이 계속되려면 지금 이 자리에 멈춰 설 순 없는 거겠죠.
그를 만나고 며칠이 흘러 부산 해운대구로 내려갔다. 지난 4일부터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차였다. 개막작은 윤재호 감독의 '뷰티풀 데이즈'. 서현우가 출연한 신작이었으므로, 일찍이 기대가 컸다.
영화는 사연 많은 탈북녀(이나영)의 이야기다. 서현우는 술집 여자인 그의 동거남을 연기했는데, 초반부만 보면 거친 날건달 풍모가 그득하다. 그러나 이건 겉보기일 뿐이다. 숱한 한국 영화들의 클리셰로 굳어진 폭력적 마초남들과 이 사내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동거녀의 지난 과거를 추궁하려 들지 않는다. 감춰둔 그의 아들 젠첸(장동윤)이 불현듯 나타났을 때에도 놀라 당황하지 않는다. 자신을 오해한 소년이 휘두른 둔기에 병원 신세를 지지만
서현우는 다시금 입증해내고 있었다. 감정을 덜어냈을 때의 연기가 왜 힘이 셀 수 있는지를, 때때로 감정은 채우는 게 아닌 비워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그런 것이었다. 그는 이미 한 걸음 더 내딛고 있었다.
[김시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