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컬처 DNA] "어렸을 때 우리가 듣고 자란 S.E.S., 신화 노래가 전부 흑인 음악이죠."
작곡가 리원(RE:ONE, 본명 이원석, 31)은 아이돌 팬이었던 누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왔다. 특별히 팝을 많이 찾아 들었던 건 아니지만 스스로의 음악적 뿌리를 블랙 뮤직(Black Music·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만든 대중 음악)에서 찾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초기 SM 아이돌 노래를 작곡한 유영진 씨는 흑인 음악을 했다"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흑인 음악을 듣고 자란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작곡해 지난해 발표한 레드벨벳 '어바웃 러브(About Love)'에는 한국 아이돌 노래로 흑인 음악에 입문한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초창기 S.E.S. 노래처럼 발랄한 이 노래는 198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한 뉴질스윙(New Jill Swing·힙합, R&B, 고고를 혼합한 장르)을 표방한다. 리원은 "현대판 S.E.S.의 향수를 주고 싶었다"며 "전형적인 옛 흑인 음악을 현대식으로 잘 풀어낸 것 같다"고 자평했다. 최근 리원과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에서 만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그가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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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리원은 팀 창작 활동을 통해 기존 한국 대중음악에 부족했던 다양성을 불어넣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종식 |
-현재 창작 집단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저와 딘을 포함해 10명 정도 되는 사람이 '유 윌 노우(you.will.knovv)'라는 팀으로 활동 중이에요. 외국의 새로운 음악을 접하고, 이를 한국화해 재미있는 작업물을 만들어내요. 한국 시장은 정말 좁은데 우리가 팀으로 활동하면 보다 폭넓은 장르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유 윌 노우'는 광고 음악을 포함해 여러 가지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해왔다. 지난해 말 발표한 딘의 '인스타그램'이 대표작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밤새 헤매는 화자의 공허함과 미니멀한 편곡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멜론, 네이버뮤직, 벅스 등 주요 음원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 차트 1위를 석권했다. 그는 "그동안 작업해왔던 곡들과 다르게 한국적 멜로디를 넣는 시도를 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리원이 소속된 유 윌 노우가 공동 작곡한 딘의 '인스타그램')
-흑인 음악에 들어갈 수 있는 한국적, 또는 동양적 색깔이 무엇인가요.
▷흑인 음악 본토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해요. 한국인이 정통 R&B(리듬앤블루스)나 힙합을 한다고 했을 때 미국인이 그 노래를 들을 이유는 거의 없죠. 정말 특출나지 않다면요. 결국 아시아인의 매력을 어느 정도 살리면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줘야 해요. 현재 방탄소년단, 몬스타엑스 같은 보이그룹도 힙합을 하지만 현지 음악과 다른 색깔이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거예요.
리원은 샤이니 '투명 우산', NCT U '예스투데이(YESTODAY)', 몬스타엑스 '그래비티(Gravity)' 등 아이돌 히트곡 작곡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특히 '투명 우산'은 그가 만들어낸 서정적 멜로디 위에 샤이니 멤버 민호, 키가 직접 쓴 가사가 조화되며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에 쓸쓸한 무드를 잘 녹여냈다는 평가다. 고(故) 종현이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는 팬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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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원은 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공부하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동영상 강좌를 통해 작곡법을 습득했다. 그런 그는 지금 NCT, 레드벨벳, 몬스타엑스를 위한 곡을 작업하며 현세대 가장 인기 있는 작곡가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김종식 |
-'투명 우산'을 어떻게 작곡했는지 궁금한데요.
▷코드를 많이 연구했어요. 슬픈 감정을 넣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뒤쪽 코드에 자꾸 변화를 줬죠. 드럼도 절제해서 썼고요. 추억으로 남을 노래를 만든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한편으론 가슴이 아파요.
-작곡가가 되는 게 꿈이었나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축구를 했어요. 이후에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자고 마음먹고 스포츠학부에 진학했는데, 1학기 다니고 그만다녔죠. 군대에 가서 이등병 때부터 '내가 직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목록을 적고, 하나씩 지워나갔죠. 상병 때 보니깐 음악만 남았더라고요. 병장 때까지는 작곡을 하기 위해 내가 뭘 해야 할지 정리하고, 제대하고 나서는 곧장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학교에서 음악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작곡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어떻게 갖게 됐나요.
▷큐오넷(온라인 음악 커뮤니티)에서 전자음악을 하는 분을 발견해 6개월 정도 레슨을 받았어요. 시퀀서와 신시사이저 다루는 법, 프로그래밍, 작곡, 편곡의 기초 같은 걸 배웠죠. 저도 뭐 하나에 꽂히면 깊게 파는 성격이라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도 보고 곡도 계속 만들어서 큐오넷에 올렸어요. 큐오넷에서는 회원들이 자작곡을 평가해 금, 은, 동메달을 줬는데요. 스물두 살에 작곡을 시작했는데, 스물세 살 때쯤 금메달을 처음 받고 신나서 더 활발한 활동을 했죠. 정식 작업물을 발표하기 전에는 작곡가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엑소 '언페어'. 리원이 이 노래를 만든 건 작곡가로서 한창 힘들었던 2015년이었다. SM 송라이팅 캠프에서 이 노래로 극찬을 받고 자존감이 고양됐다고 그는 회상했다.)
-탄탄대로를 걸으셨군요.
▷그렇진 않아요. 큐오넷 중심으로 2년쯤 활동하다 보니 힘들더라고요. 인맥이 없으니 어떻게 제 곡을 팔아야 할지도 몰랐고요. 음악을 접고 할머니 댁으로 가서 곶감 농사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 내용을 담아 큐오넷에 마지막 인사 글을 올렸는데 온라인에서 교류하던 형님이 쪽지를 주셨어요. 잘하고 있는데 왜 지금 그만두려고 하냐고. 그 형과 가요 쪽 작업을 함께하며 대중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입봉(프로 작곡가로서 첫 작업물을 발표하는 행위)곡이 무엇인가요.
▷동방신기 '헤븐스 데이(Heaven’s Day)'요. 제가 그 형이랑 들어갔던 퍼블리싱 회사(저작권 수익을 관리해주는 회사)는 시스템화가 잘 돼 있던 곳이었거든요. 프로듀서, 작곡가 파트가 따로 돼 있고, 트랙 작업을 한 후 외국에 보내면 그 위에 멜로디를 짜서 보내줬어요. 원래 퍼블리싱 회사 들어가기 전의 목표가 SM에 노래를 판매하는 거였어요. 마침 SM에서 최강창민 씨 솔로곡을 찾고 있어서 저의 R&B곡이 들어가게 됐죠.
그의 활동명 리원(RE:ONE)에는 다시 들어도 좋은 음악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색깔을 확 드러낸 프로듀서 앨범도 일 년에 두어 차례 낼 계획이다. 내후년께부터는 미국 빌보드 차트도 직접 공략하겠다는 포부다. 본인처럼 학교에서 음악을 배우지 않은 작곡가 지망생들에게 그는 "음악적 뿌리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요즘에는 유튜브만 찾아봐도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자료가 넘쳐요. 그래서 이제는 어디에서 배웠는지보다 누가 얼마나 끈기 있게 붙들고 가느냐가 훨씬 중요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명심해야 할 사실은 트렌디한 음악을 만들고
[박창영 문화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