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가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우월했던 이유가 21세기에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주의는 정보처리와 결정 권한을 분산하는 반면 독재는 한곳에 집중시킨다. 그런데 너무 많은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누구도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라리 교수는 인공지능(AI)이 정보처리와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한 21세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짚었다. AI는 정보량에 구애받지 않을 뿐 아니라 정보가 집중될수록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20세기에는 독재에 장애가 됐던 정보집중이 21세기는 독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를 지배했던 자유주의가 고장 났다고 진단한다. 자유주의는 공산주의, 파시즘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긴 뒤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화, 자유화의 모순과 한계가 드러나면서 신뢰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가속화하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신이 자유주의에 대한 불신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본다.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제조업에 기반을 둔 20세기 산업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체제여서,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기술 분야의 혁명적 변화에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경제와 사회뿐 아니라 신체와 정신, 생명까지 통제함으로써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발전이 미래의 기회이자 현재의 위기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라리 교수는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 수십억 명의 일자리를 뺏고 인류가 이룩한 근대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권위주의 정부가 알고리즘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절대적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른바 '디지털 독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술 혁명이 모든 부와 권력을 극소수 엘리트에게 집중시키고
그러나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하라리 교수는 기술적 도전이 크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해도 우리가 두려움을 조절하고 조금씩 겸허해진다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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