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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보성 |
여기 문자의 심장 그 울림과 박동에 귀 기울이는 작가 멀티 아티스트가 있다. 처음부터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문자를 가지고 그의 생각을 전하는 시인, 화가 금보성이다. 이미 몇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으로서, 생각과 사상을 전하는데 있어 문자의 한계란 메시지 전달의 수사학으로는 최고겠지만 전혀 비주얼한 시각적인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시지의 전달욕구가 강한 예술가로서 더욱이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금보성은 그것이 참 못 마땅하고 큰 불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쓰는 그 문자에 색을 입히고 형태를 더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그것은 그에게 성공이었다.
시인 출신답게 금보성 이름 앞에는 ‘한글 작가’라는 수식어가 낙관처럼 붙어 있을 정도로 그는 한글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열정적으로 전개 했다.
글자로 입체 조각을 만들고 글자를 풀어 헤치면서 그는 작가로서 표현의 다각화에 정진했다.
결국 고등학교 무렵부터 시를 쓰고 3학년 때 등단 후 글을 다루는 일상 속에 살며 문자 자체가 그림이 될 수 있겠다는 신념이 자연스럽게 글에 올라타 색이 되어 21세기 민화의 문자도 같은 작품에 도달한 것이다.
금보성의 문자언어에서 기하학적 작업 세계가 오늘에 이르는 배경이다. 그에겐 이러한 필연적인 고뇌의 과정이 있었다. 그러한 자세로 작품을 발표한 개인전이 무려 50여회에 다다른다.
어쩌면 그는 문자로 그것이 어떻게 예술이 가능한가를 치열하게 보여줌으로서 한글의 우수성도 말하고 싶었고, 문자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창출하고도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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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쩌면 한글이 평면이나 입체로 나타낼 수 있는 아주 이상적인 조형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응노의 문자추상과 남관의 문자 추상을 잇는 그런 작업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쇠나, 돌 나무, 종이 스티로플등 모든 재료들을 사용하면서 작업을 확장 시켰다. 초기에는 캔버스 이었지만 이후에는 종이, 골판지, 콘크리트, 쇠, 나무, 스티로폼, 천, 풍선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면서 ‘바다미술제’에 컬러풀하면서 가벼운 대형 작업을 발표 했다.
이제는 금보성 작업의 랜드 마크처럼 된 풍선을 이용한 6미터가량의 방파제 작업이 그것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방파제 이지만 ‘ㅅ’자 형태의 한글 자음이었다.
물론 이러한 회회작업의 바탕에는 그가 2008년 학고재 갤러리에서 보여준 뛰어난 구성과 조형성의 저력에 기인한다.
한국판 몬드리앙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의 당시 회화적 조형성은 분명 화려한 기교가 없음에도 조형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오래 머무르는 작품들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휩싸이지 않는 자기다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고백했다. “모든 것에서 얽매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 또한 붓을
나는 그가 벌이는 다양한 인간적인 예술작업과 행위들이 한글작업에 올인하여 한글의 큰 그림을 그려내길 기대한다.
김종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