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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이어서 함께 일하기 좋다"는 정 감독은 늘 새로운 감동을 찾아 헤맨다. 정 감독이 사무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김재훈 기자] |
비가 가볍게 내리던 날,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정 감독을 만났다. 그는 작업을 카페에서 하는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이곳을 인터뷰 장소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인상의 그는 때때로 "나에게 B안(案)은 내가 일을 맡지 않는 안밖에 없다"고 말하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한 잔씩 둘 앞에 놓인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상을 전공했나.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에 갑자기 미술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게임에 빠져 있어 시각디자인을 배우고 게임회사를 가고 싶었지만 손재주가 부족한 편이라 미대 안에서 이론을 다루는 홍대 예술학과에 입학했다. 미술사와 미학 등을 가르치는 곳이고, 학교에서 디자인과 회화 수업, 판화 등 다른 전공 수업을 조금씩 들으러 다녔다.
―뮤직비디오를 처음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방송국 미술팀에서도 일해보고 사진작가를 하는 선배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 작은 잡지 사진 등을 찍으며 커리어를 시작했다가 그래픽디자이너로 넘어갔다. 그렇게 하며 틈틈이 단편영화도 만들어 보고, 전시장에 영상 설치도 했다. 홍대 앞 공연장을 다니며 음악이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인디밴드들에 다가가 포스터와 앨범재킷 디자인, 뮤직비디오 제작을 제안했다. 그러던 중 같은 과 신입생으로 밴드 혁오의 보컬 오혁이 들어왔다. 신입생이 만든 노래라며 들었던 게 혁오의 '위잉위잉'이었다. 이건 될 노래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혁에게 만나자고 연락해 '위잉위잉'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혁오밴드가 유명세를 얻어가며 뮤비도 함께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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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인쇄물, 사진을 함께했다. 비디오는 기업 홍보물이나 다큐 위주였는데 어느새 영상 위주로 작업하고 있다. 요즘은 거의 뮤비와 광고 위주이다.
―다른 작업을 하다 뮤직비디오를 하면 차이점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 뮤직비디오를 작업할 때는 사람이 영상에 나오는 게 힘들었다. 사람이 없는 비디오나 소규모 팀 형태로 시작했는데, 일의 규모가 커질수록 카메라 앞과 뒤의 사람들도 늘어만 가고 있다. SM과 JYP 등 대형 기획사와의 작업은 사실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지코나 수지 등 유명 아티스트와 작업하며 이름이 알려졌는데, 이전과 삶이 달라졌나.
▷이상한 말이지만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된다. 예전에는 혼자 만들고 사람들이 봐주지 않아서 슬퍼했는데 제작비도 늘어나고 많은 사람이 작품을 봐주다보니 좋은 만큼 책임감이 든다. 그림에 욕심을 내다보니 제작비에서 연출료를 넘기는 일이 많다.
―창작자로서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있을 것 같다.
▷내가 갖고 싶은 그림이 있고, 의뢰한 사람이 갖고 싶은 그림이 있다. 그 간극을 줄여나가는 게 감독의 일이라 생각한다. 배우도 그때그때 다른 사람이고, 미술감독이 지은 세트가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결국 인력이 모여서 만드는 일이라 그것을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돌 뮤비까지 제작 범위가 넓어졌다.
▷연주곡이나 밴드음악을 좋아하는데, 최근 유행하는 음악 장르들은 일을 하며 친숙해졌다. 사람들이 정말 K팝을 많이 즐긴다는 것을 해외 촬영 때마다 느낀다.
―아이돌 뮤비를 만들 때 특징이 궁금하다.
▷애증의 장르다. 아이돌 뮤직비디오는 보통 긴급하게 준비되고, 짧은 시간에 집중력 있게 찍고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팀이 많으니 경쟁심도 생기고, 머릿속의 욕심과 주어진 현실 사이에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많았다.
반면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비주얼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들 또한 이들이다. 그것이 고맙고 신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돌 뮤직비디오도 애착이 간다. 아이돌 뮤비는 또 피드백이 엄청 빠르다. 댓글도 바로 달리고, 팬들의 리액션 비디오도 나오고, 블로그 포스팅도 된다. 팬들이 정말 자세하게 봐줘서 애착이 간다.
사실 무섭기도 하다. 팬들이 "감독이 안티네" 이런 댓글을 달 때도 있다. 이 아티스트는 이렇게 찍어야 하는데 왜 감독이 다르게 찍었나 하는 얘기도 있다. 팬들이 만드는 콘텐츠도 퀄리티가 높다.
―정 감독의 작품은 컬러와 톤이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미술과 사진작가 책이 있다. 학교 다닐 때 제임스 터너와 모네의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 그들의 그림을 보면 내 비디오와 색깔이 비슷하다. 학교에서 미술사를 배우고, 그림을 계속 공부해 오며 내 톤을 찾았다.
―그림에서 영향을 많이 받나.
▷책을 많이 본다. 보통 뮤비 기획안을 보여달라고 하면 콘티를 가져가거나 다른 뮤비를 가져가서 느낌을 설명하는 대신, 나는 책을 몇 권 들고 가거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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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나 사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보니 초기에는 사람을 연출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관찰하고 바라볼 때의 마음이 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 사람들의 모임을 멀리서 보면 도시가 되고, 더 물러나서 보면 풍경이 된다. 또 영화도 보통 풍경이 좋은 곳에서 찍지 않나. 외국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 신이나 뮤직비디오들을 좋아한다. 가령 혁오의 공드리 같은 경우는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가 아시아에 살았으면 이런 느낌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일본도 영상에 자주 등장한다.
▷가까워서 자주 간다. 일본은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다양한 풍경이 있다. 산이나 들을 다니면, 일본이나 미국은 하나의 느낌이 반복되는 동화 같은 풍경이 많다. 반면 한국은 지금의 나에겐 굉장히 세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비슷한 느낌을 내기는 어렵나.
▷클라이언트에게 그런 요청이 많이 온다. 평창에서 공드리 뮤비처럼 찍어달라거나, 제주도 가서 미국처럼 찍어달라는 요청. 나는 그건 잘못된 요청이라 생각한다. 평창을 평창처럼 찍는 건 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공드리를 찍으라 하면 말이 안 되는 미션이다. 제주도는 제주도로 나와야 한다. 서울 느낌은 서울에서 날 수밖에 없다. 찍는 대상이 있는 그대로 나와야 아름답다.
―수지의 'Holiday' 뮤비에선 흰 사막이 등장했다.
▷노래 자체가 여배우의 휴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특별한 휴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고전적인 할리우드 톱스타가 할 것 같은 그런 휴가를 생각해봤다. 다행히 수지 씨도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뮤비를 찍은 장소는 미국 텍사스 인근의 화이트샌드라는 곳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특별한 풍경이다.
아티스트가 한 앨범을 내면 뮤비 여러 개가 나온다. 비슷한 느낌이 나는 '교통사고'가 나면 안 된다. 다른 아티스트가 쉽게 카피할 수 없게, 그 사람에게 나만 줄 수 있는 걸 해보려 한다.
―영상미로 인정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지는 않나.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따라하는 것 같다면서 제보해주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싫었다. 내가 힘들게 고민한 만큼. 그런데 나 역시 많은 것을 참고해서 만든다. 누군가 나를 보고 따라한다는 건 만드는 사람에게 복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나의 느낌을 가져가고 싶은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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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수 비주얼스프롬 영상감독은 뮤직비디오 제작자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꼽힌다. 정 감독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자신의 8㎜ 카메라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김재훈 기자] |
▷TV나 책이 꼭 나오는 편이다.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측면에서 책이나 TV를 좋아한다. 모양이 특이한 TV나 표지가 없는 책, 때로는 대중적인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이 봤던 소설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
―어떤 소품을 활용할 때 시청자들이 좋아하나.
▷사람들은 항상 완전히 겪지 못한 것에 대해 향수를 느낀다. 사람들은 이미 흘러갔고 앞으로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그리워 한다. 너무 가까울 때는 잘 모른다. TV 드라마가 사라지면 TV 앞에 모여 보던 드라마가 그리운 것처럼. 그런 추억의 물건들을 잘 모으는 편이다. 나도 1958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책을 갖고 있다.
―함께 작업하기 힘들었던 클라이언트가 있었나.
▷오히려 내가 가장 함께 작업하기 힘든 감독일 것이다. 우는소리도 많이 하고,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기획안을 보며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항상 제작비를 더 달라는 얘기도 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는 항상 선택지를 달라고 한다. 나에게 B안은 잘 없다. 보통 B안은 내가 아닌 다른 감독이 더 잘하겠다 싶은 것들이다. 거기까지도 감독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 가장 잘 나올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을 찾는다.
―들어온 기획과 본인의 색깔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잘할 수 있는 일만 맡는다. 기획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다른 감독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우리는 롱테이크로, 컷이 많지 않은 작업을 잘하는데 무조건 많은 컷과 기술적으로 다양한 편집을 요구하면 그런 센스가 좋은 분들에게 연결해 드린다.
―반대로 작업하기 좋은 클라이언트의 특성은 어떤 게 있나.
▷자유를 주는 클라이언트. 나를 최대한 신뢰해 주는 사람이 아무래도 가장 감사하다. 그냥 알아서 해라 이렇게, 혁오나 지코 같은 경우 내가 제시한 방향이 아니면 안 하겠다고 했는데 'OK'를 해줬다. 거기서 'OK' 해주는 사람이 잘 없다. 사실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해외와 한국의 영상 제작 환경 차이도 궁금하다.
▷서울이나 한국이라는 비좁은 환경에 비해 많은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다보니, 쉽게 유행이 만들어지고 흥미도 빠르게 식는다. 제작 규모가 다양하고 문화가 뒤섞인 미국의 경우 감독이 원하는 시각적 스타일이 더 많이 이해받는다. 찍을 곳도 많고, 촬영에 대해 긍정적이다. 바다 건너에 대한 열망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슬럼프가 찾아온 적은 없나.
▷일이 없을 때가 슬럼프다. 비싼 척하다가 사람들이 진짜 비싸다고 생각해서 연락 없을 때도 있다. 해외촬영을 많이 가다 보니 두세 달 나갔다 오면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영상 감독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
▷'액트 오브 킬링'이라는 영화가 있다. 상을 많이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서방세계가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적 성격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그 영화는 약간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사상을 종용하는 '독재 같은 영화'라고 느꼈다.
작업 초기에는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영화가 잘되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내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걸 알았다. 목적을 잃으니 의욕도 사라졌다. 마침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때여서,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카메라 쳐다보기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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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기엔 너무 많이 왔다. 다른 일을 시작하자니 엄두가 안 났다. 그 영화보다 좀 더 나은 걸 해보자는 생각에 다시 시작했다. 그때부터 제작비가 큰 일도 맡기 시작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옛날에는 유럽 영화, 작가주의 영화를 좋아하고 환상도 있었다. 지금은 미국 영화를 오히려 더 좋아한다. 스태프들을 현장에서 보니까 미국 사람들이 정말 영화 사랑한다는 게 느껴졌다. 팝이 다 그렇다. 다 같이 즐겁고. 작가주의 영화는 감독은 빛나는데 스태프는 오히려 조명되지 않는다. 기왕이면, 참여한 이들이 같이 잘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 영화가 매력인 건 좋은 음악이 영화에 나오고 사람들이 음악으로 영화를 기억하는 경우도 많다. 옛날 영화일수록 더욱 그렇다. 나도 그런 걸 좋아해 영화 같은 뮤비나 뮤비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목표가 있다면.
▷영화를 찍고 싶다. 희망 사항이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를 시도한 적은 없나.
▷제주도에 가서 영화를 찍겠다고 1000만원을 모았다. 근데 이걸로 계산이 안 맞더라. 대기업의 간접광고를 받아주겠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걸 받으면 광고랑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그 돈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저예산 뮤비를 제작하고 현지 스태프들과 일하는 법을 익히면서 용기를 얻어 돌아왔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종국에는 할리우드에 가서 영화를 찍어보는 게 내 꿈이다. 영화 버드맨과 그래비티 감독이 다 멕시코 출신이다.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다른 것을 본다. 블록버스터나 액션을 해보고 싶다. 마블 영화들이 유행이고 나도 좋아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좋아하는데, 쉰들러리스트나 죠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AI 등 영화가 다 전혀 다르다. 제작비와 관객의 푯값을 책임지는 감독이 최종 목표다.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미국에서는 어느 지역을 좋아하나.
▷최근에는 LA로 가고 싶다. LA가 뉴욕이나 유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잘 변하지 않는 곳이고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가장 보편적인 것들이 그곳에 남는다. 변화의 폭이 크지만 그 속도는 조금 느리다고 느낀다.
―함께하는 스태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시청자의 눈높이처럼 스태프들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도 특히 세트에서 만든 영상 보여주면 놀라워한다. 들어간 시간과 돈의 액수를 이야기해 주면 더 놀란다.
스태프들이 자기 삶을 바쳐서 영상을 만들어도 결과물은 그 스태프들을 비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감독으로서 스태프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스태프들이 "나 정 감독과 일했어"라고 말하는 게 자랑스럽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어떤 감독으로 비쳤으면 하는지.
▷실패하지 않는 감독이 되고 싶다. 영상감독은 현 시대에서는 선택받는 직업이다.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광고나 음악, 제품, 기획이 나를 원할 때 투입이 된다. 내 작업이 시간이 지나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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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오의 공드리 뮤직비디오. |
▷어린애 같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미국에서 내가 너무 어린애 같지 않냐고 주위에 물어보면 감독이 제일 어린애 같아야 한다고 얘기해줬다. 현장에서 가장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사람이 감독이기 때문에…. 그게 힘이 많이 됐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게 제일 좋다. 혼자 만족하고 싶어서 영상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만족해도 친구나 보는 사람들이 시큰둥하면 마음이 안 좋다. 예전에는 신경 안 썼다. 이거 못 알아보는 너희들이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사람들이 안 좋아할까, 너무 내 생각만 했나,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
―미래에 꿈꾸는 모습이 있나.
▷프로덕션 규모가 커지면 감독이 경영에 신경 써야 하는 형태가 된다. 제작보다는 계산을, 파트너십 유지를 생각한다. 나는 비디오 만드는 게 너무 좋다. 60세 먹어서도 잘할 수 있는 일만 하며 일선에서 일을 하고 싶다. 승부욕이 있는 편이다. 결과를 떠나서 매번 기대할 수 있는 새 영상을 만들고 싶다.
■ 정진수 감독은…
젊은 뮤직비디오 감독 가운데 돋보이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6년 홍익대 예술학과에 입학했다. 사진 스튜디오, 방송국 보조, 광고 연출부 등 아르바이트를 다양한 경험을 거쳐 2011년 스튜디오 비주얼스
[정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