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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 포스터/사진=스타투데이 |
한치 앞을 내다보는 것마저 어려운 것이 청춘이다. 청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불확실하다. 주인공 종수(유아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종수는 소설가를 꿈꾸지만 그의 글에는 진도가 없다. 진척이 없는 종수의 소설처럼, 종수의 삶 역시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뿌연 안개 낀 세상 속에서 종수는 계속해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감독 이창동은 '버닝'을 통해 청춘의 무력감과 분노를 표현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종수의 분노는 어디로 발화될까.
영화는 종수가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를 우연히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가기 위해 종수에게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부탁한다. 종수는 고향 파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 이에 종수는 해미의 자취방과 자신의 고향집을 오고 가면서 해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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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 전종서/사진=스타투데이 |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돌아 왔다는 연락을 받은 날, 종수는 들뜬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한다. 하지만 종수를 기다리는 것은 해미와 함께 있는 벤(스티븐 연)이라는 남자. 벤은 겉으론 다정해 보이지만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듯하다.
종수는 벤에게서 어딘가 '찝찝'한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 벤의 집 화장실에 여자 화장품과 액세서리가 많아서? 해미에게 흥미 있는 척 굴고는 하품하는 모습을 종수가 봤기 때문에? 겉으론 친절해도 항상 날이 선 말을 종수에게 건네서? 종수는 해미에게 벤과 멀어지라고 하고 싶지만, 자신도 명확한 이유를 댈 수 없다.
이처럼 영화는 그럴듯한 단서들을 제시하지만, 정확한 사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단서들을 놓고 '이런 사건이 있었겠구나'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버닝'은 수수께끼 같은 전개와 의미심장한 대사들, 그리고 중점이 되는 세 청춘의 얽힌 관계들을 다루면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러한 궁금증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영화가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데 있다. 명확한 인과관계란 이 영화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내내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게 된다. 무엇이 진실인지, 진실을 알 수는 있는 것인지 따위의 질문들을 간직한 채 영화는 흘러간다. 마치 감독이 건넨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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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 유아인, 스티븐 연/사진=스타투데이 |
영화 속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캐릭터 벤. 그는 자신이 가진 비밀을 종수에게 털어놓는다. 벤의 비밀은 두 달에 한 번씩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 벤은 "쓸모 없는 것을 태우는 거다"라며 범죄에 대한 이유를 종수에게 말해준다.
벤이 비밀을 털어놓은 그날 해미가 사라졌다. 해미가 사라진 것은 벤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왜인지 종수는 '쓸모 없는 것'의 대상이 해미 같다는 무서운 예감이 든다. 종수의 예감대로 해미가 죽은 게 맞다면, 그 범인은 벤인 걸까. 해미가 사라진 그날부터 종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들은 결국 종수를 파국으로 몰아세운다.
종수는 해미의 행방을 알기 위해, 머릿속을 지배하는 질문들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벤을 추적한다. 종수의 끈질긴 의심은 관객들에게 '해미를 사라지게 만든 것은 벤이 아닐까'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관객들이 앞선 장면들을 곱씹고 대사를 되짚어 나름의 추측과 해석을 내리게 할 뿐이다.
그래서 한꺼번에 터져버린 종수의 발화는 오히려 맥이 풀리게 만든다. 끊임없이 질문을 건네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 것 치고는 살짝 허무함 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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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 포스터/사진=스타투데이 |
청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영화를 기대했다면 아마 실망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극단적인 결말과 그런 결말에 부여하려고 했던 정당성이 과연 관객들에게도 합당한 합리화를 시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주인공들의 연기력과 영상미는 최고…관객 공감 얻을 수 있을까
다만 주인공 세 명과 아름다운 영상미 만큼은 발군이다. 유아인은 순수하고도 예민한 종수와 완벽히 몰입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돌진하는 종수의 캐릭터는 평소 유아인이 보여줬던 솔직하고 가감 없는 모습들과 연결 지어진다.
전종수 역시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극의 흡입력을 높였다. 차가운
수수께끼 같은 영화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주는 즐거움이야 있지만, 그 답을 모든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17일 개봉.
[MBN 온라인뉴스팀 유찬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