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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산동 작업실에서 홍시색 `묘법` 시리즈 앞에 선 박서보 화백. [이승환 기자] |
"지난주 제주도 집에 다녀왔는데 감나무에 홍시 5개가 매달려 있더군요. 새들이 쪼아 먹은 흔적이 묘하게 아름다웠어요. 따 먹어 보니 아주 맛이 좋았어요. 허허."
노화백의 웃음이 소년처럼 맑았다.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비운 덕분이다. 2개월 물에 담근 한지를 캔버스에 올린 다음 연필로 100번 이상 문질러 하나의 골을 만든다. 그렇게 파놓은 수많은 골짜기 사이에 오욕칠정의 찌꺼기가 들어있다.
"연필을 45도 각도로 잡고 하루 종일 선만 쫙쫙 그어요. 수없이 선을 밀면서 일상의 나를 비워내지요. 그림은 수신(修身)의 도구이자 과정이에요. 나를 맑게 걸러내서 그런지 스님 같다고들 하네요."
요즘 묘법 시리즈는 붉은색과 공기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는 공기에도 색깔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색도 아니고 하늘색도 아닌 희끄무리한 색이에요. 공기색을 그려놓은 후 그림 앞에서 호흡하려고요. 동경화랑 창업자인 야마모토 타카시가 '한국 작가는 독특한 흰색을 가졌다'고 하더군요. 조선 시대 아낙네들이 군불을 땐 잿물에 광목을 삶아 개울에 빨아 널어놓으면 희끄무리한데 아주 매력적이라고요."
묘법 시리즈에는 사각면이 종종 등장한다. 박 화백은 "내 마음의 창"이라고 설명했다. 답답하면 거기에 코를 박고 숨을 쉰다고. 그림을 보는 사람도 공감하기에 화업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지난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흰색 묘법 시리즈가 14억7138만원에 낙찰됐다. 작가의 세계 경매 최고가다.
단색화 열풍을 이끈 대부 답게 후배들의 숨통을 틔워주려 한다. 내년에 박서보 국제 미술상 1회 수상자를 선정해 상금 1억원을 줄 예정이다. 올해 40억원을 서보미술문화재단에 기부해 50대 이상 중견작가를 지원할 계획이다.
"50세가 넘으면 죽으나 사나 예술 밖에 없어요. 젊은애들은 딴 짓을 해서 지원할 필요가 없어요.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을 삶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30대에 그만둬요. 지금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어요. 국제적으로 심사위원 10명을 선정해 작가 2명씩 추천받으려 합니다."
그림이 안 팔리던 시절을 뚝심 있게 견딘 후 팔순을 넘겨서야 빛을 봐서 후배들의 고통을 잘 안다. 그는 83세이던 2014년 단색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세계 미술계 중심에 서게 됐다.
"김창열, 이우환 작품은 잘 팔렸는데 난 늘 천덕구러기, 찬밥 신세였어요. 그래도 한 번도 그림을 팔아보려고 노력해본 적은 없어요. 내 앞에서 군림하고 거들먹거려도 안 받아주거든요. 굴복하는 버릇이 없어요. 안 팔려도 죽자 사자 그렸더니 1980년대에 300만원에도 안 팔리던 '연필 묘법'이 지금은 14억원에 팔리게 됐어요. 인정받으니 기분은 좋네요."
노년에는 시간 가는게 두렵다고들 하지만 그는 내년을 기쁘게 기다린다. 다가오는 3월 29일 홍콩에서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뮤지엄 미술상을 받는다. 세계 굴지 미술관장과 컬렉터 400여 명 앞에서 수상하게 된다.
1975년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었던 5인의 단색화 전시 '5가지 흰색전'도 43년 만에 재현한다. 당시 서승원, 허황, 고 이동엽, 고 권영우와 참여해 일본 아사히신문이 올해 가장 주목할 전시 톱5에 선정했을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다. 내년 3월 10일 같은 화랑에서 리바이벌 전시를 연다.
"일본 모노하 운동을 이끈 다카시 회장이 기획한 전시였어요.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셨죠. 그 아들 타바타 유키히토 대표가 이번 전시를 기획했어요. 과거 작품이 오늘날 어떻게 변했는지 양면을 보여주는 전시에요."
현재 상암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내년 4월 완공되는 연희동 주택으로 이사한다. 1층에는 갤러리를 연다.
"외국 미술관 컬렉터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매번 작품 비닐을 벗겨 보여주고 다시 보관하는게 힘들어요. 1층에 작은 갤러리를 만들어 시대별로 작품을 전시하려고요. 오픈하우스날에 와인 파티를 열까 합니다. 내년은 참 재미있는 해에요. 그 동안 뒷바라지해준 아내와 결혼 60주년을 맞이하죠."
런던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그의 작품을 정리하는 아카이브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 이어 올해 1월 그의 개인전을 연 세계적인 화랑이다. 전시를 오픈하기도 점에 작품 16점이 다 팔려서 뉴욕타임스가 '100만 달러 작가'로 대서특필했던 전시다. 박 화백은 "화이트큐브에서 작품 정리를 돕겠다고 해서 시작했다. 위작 시비를 막기 위해 생전에 아카이브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런던 테이트모던, 워싱턴 허시혼 미술관, 뉴욕 솔로몬구겐하임, 모마(MoMA),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등에서 소장되고 있다. 미술관 뿐만 아니라 사람들 피부 가까이에서도 그의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다. 최근 삼성물산 패션부문 여성복 브랜드 '르베이지'와 콜라보레이션(협업) 상품을 출시했다. "수익금을 삼성의료원에 기증해 어린이 개안수술을 지원한다고 해요. 여성복이라 나는 못 입고 마누라와 며느리가 입었지요."
개안수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고 싶다. 이미지 홍수 시대에 사색과 명상을 담은 단색화로 현대인을 위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21세기는 스트레스 병동 자체에요. 평생 자식 교육에 매달리다가 정년퇴임 후에는 노후를 보장받기 힘들죠. 예술가가 토해 놓은 과한 이미지로 지쳐 있는 사람들을 괴롭혀서는 안되요. 그림은 고뇌와 불안을 빨아당기는 흡인지가 되야 해요. 예술가는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숙원사업인 미술관은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최근 강원도 한 도시에서 제안했으나 미술관 터와 예산 조건이 맞지 않았다.
"제대로 지으려면 용지 6600㎡(2000평)에 70억원(건축비)이 소요될 것 같아요.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피터 줌터가 설계를 해주면 좋겠어요. 수원에 짓는 내 친구 고은(시인) 문학관 설계를 맡았다고 해요. 내 고향 예천은 너무 멀고, 제주도는 관광객이 많으니까 좀 낫죠."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모교 교수를 역임한 그는 서울대 출신 김창열, 이우환과 가깝게 지내왔다.
"창열이는 전화만 걸면 '나 오래 못 살 것 같다'고 해서 협
3시간 가까이 계속된 인터뷰는 침술사의 방문으로 끝이 났다. 지난 2009년 뇌경색이 온 후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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