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바다를 보고 자란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은 독일 베를린에서 숨을 거뒀다. 나비처럼 날아가 고국 땅을 밟고 싶었지만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입국이 금지됐다. 2년간 서울에서 복역한 후 1969년 독일에 간 후 그 곳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다. 1971년 독일 국적을 취득한 후 베를린 음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세계 음악계의 찬사를 받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다.
그는 두 번째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에서 자신의 처지를 나비에 빗댔다. "백 년 세월은 한 마리 나비의 꿈같도다/ 과거사를 돌아보니 모두가 덧없는 것을/ 오늘 봄이 오면 내일 꽃이 지나니/ 벗이여, 어서 술잔을 드세/ 저 등불이 꺼지기 전에."(오페라 도입부 합창곡)
그의 고향에서 결성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가 망향의 한을 달래러 독일에 간다. 윤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열흘에 걸친 유럽 투어를 결정했다. 22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출발해 25일 독일 보훔 무지크포룸, 26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28일 하노버 헤렌하우젠 궁전, 29일 오스트리아 린츠 브루크너하우스, 30일 체코 브르노 베세드니 둠, 10월 2일 슬로바키아 레두타 브라티슬라바 콘서트홀로 이어지는 대장정이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는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통영시의 예술 홍보대사로 활용하기 위해 창설됐다.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독일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국내외 여러 연주자를 모아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들었다. 리브라이히는 "클래식 음악으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첫 번째 다리를 만든 작곡가가 바로 윤이상"이라고 강조하며 TFO를 동·서양 음악의 통로로 키웠다.
이후 크리스토프 포펜, 미하엘 잔덜링,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켄-데이비드 마주어, 스테판 애즈버리, 하인츠 홀리거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TFO를 지휘했다. 음악제 기간에만 모이는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평소 단원들은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로열 스코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 크레메라타 발티카,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에 소속돼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관계자는 "윤이상을 추모하고 아시아 현대음악의 중심지로 성장한 예술도시 통영을 해외 예술계에 알리고자 투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유럽 투어 지휘는 스위스 출신 하인츠 홀리거가 맡는다. 윤이상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막역지우였던 그는 투어 연주곡으로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1992년)과 '하모니아(1974년)'를 골랐다.
윤이상이 75세가 되던 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은 거장의 풍모와 연륜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992년 6월 2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홀란드페스티벌에서 한스 폰크가 지휘하는 라디오 필하모니 교향악단과 바이올리니스트 베라 베스의 협연으로 초연됐다. 이번 유럽 투어 협연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맡는다. 그는 2013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활약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하모니아'는 대중 친화적으로 변모한 음악 스타일이다. 1975년 1월 22일 독일 헤어포드에서 롤프 아곱이 지휘하는 지겔란트오케스트라 연주로 초연됐다. 두 곡 외에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 '어미 거위'도 연주될 예정이다.
윤이상은 1995년 독일 자아브뤼겐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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