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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때의 사랑이란 물론 남녀 간의 사랑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꼭 그 좁은 범주 안에 가둬둘 필요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일상 저변의 가깝고도 먼 존재들에 마음의 귀를 열어서는, 이들의 고통까지 함께 감각해보려는 안간힘 또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작가의 열번째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은 그 지난한 노력의 결실들이다. 여덟 편의 단편들마다 세상의 상처를 내일처럼 감각해보려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첫 작품인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라고 말한 아버지의 생애를 더듬는다. 어느날 불현듯 떠나버린 당신의 부고 소식이 아프리카에서 들려오고, '나'는 뒤늦게야 아버지의 과거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집을 떠나고, 일터를 떠나고, 나와 어머니를 떠나고, 나와 어머니가 포함되어 있는 가족을 떠나고, 그리고 여기,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정말로 떼어내기를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점점 아버지의 견디는 삶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세상에서 살았고, 그러나 세상은 험악했고,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 했다"라는 쓸쓸한 글을 남긴 아버지의 고뇌를. 그리고, 떠난 남편을 책망했던 어머니의 완고함을.
그리고 여기,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복숭아 향기'의 주인공인 '나'는 어머니가 단 한 번도 얘기하지 않던 고향 M시에서 근무하게 된다. 복숭아 향기 자욱한 이곳에서, 당신이 젊은 시절 감수하려 했던 불행의 전모가 외삼촌에 의해 드러난다. "사람의 운명이란 게 이렇게 정해지는보구나"라고 토해낼 수밖에 없던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의 비통한 역사가.
이제 책은 사회를 되비추는 거울로 나아간다. 은연 중 다수가 외면했을 세상의 상처를 응시하며, 그 안에 소금을 가득 발라대는 것이다. '맘몬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빚의 수렁에 빠져서는 결국 죽음에 이른 아버지('강의'), 와이파이만 쓰려했을 뿐인데 성범죄자로 오인받게 된 외국인 노동자 틴 카우('넘어가지 않습니다')와 또다른 외국인 노동자
쓴다는 행위로 타인의 고통을 보듬으려는 작가는 책 말미 이렇게 썼다. "각각의 소설들에 그 소설을 쓸 때의 시대의 간섭이 선명하다. 어떤 소설은 그 간섭에 대한 토로이다. 세상이 요동칠 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없다."(작가의 말)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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