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최진영 작가, 김덕희 작가, 백가흠 작가, 김근우 작가, 김희선 작가 |
여기, '잠 못 드는 무더위의 밤'을 달래줄 방책이 있다. 어차피 뒤척일 바에야 일단 불을 켜자. 그런 다음 아래 소개할 한국 소설 한 두권만 잡아 읽자. 이건 꿩 먹고 알 먹기일 지도 모른다. 간만에 소설을 펼치니 정신도 꽤나(?) 맑아질 것이고, 혹자는 안 오던 잠도 솔솔 올 것이고.
말이 길었다. 총 다섯 권. 일별하자면, 최진영 작가의 장편 '해가 지는 곳으로'(민음사), 김덕희 작가의 소설집 '급소'(문학과지성사), 백가흠 작가의 중편 '그리스는 달랐다'(난다), 김근우 작가의 장편 '우리의 남극 탐험기'(나무옆의자), 김희선 작가의 장편 '무한의 책'(현대문학)이 되겠다. 팔색조 매력의 소설들이니, 취향대로 골라 잡으시길.
차례대로 가자. '해가 지는 곳으로'는 최진영 작가의 다섯 번째 장편이다. 최 작가는 데뷔 이래 힘차게 나아가는 서사와 여운 짙은 서정으로 각광받아왔다. 이번에는 제 소설 지평을 좀 더 넓힌 모습이다. 최초로 아포칼립스 소설에 도전했다.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사방을 뒤덮은 대재앙의 시대가 배경. 감염돼 죽은 사람들이 사위로 즐비하고,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안전지대를 찾아야 한다. 혼란의 서사가 로드무비와 결합된 인상인데, 그 아수라의 복판에서 어머나, '사랑'이 싹튼다. 그것도 두 여자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단단하다, 그리고 정확하다. 신예 작가 김덕희의 작품은 군살없이 촘촘하고, 세밀하다. 서사는 꽤 오래 숙성된 듯 넓고 깊은데, 예상 못한 전복과 재전복의 전개가 시시때때로 읽는 이를 놀래킨다. 그의 첫 소설집인 '급소'는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난 인물들을 그린다. 어느 한 곳 발 디딜 데 없는 벼랑의 지근거리에서 간절히 제 자리를 찾으려 발버둥친다. 김덕희 작가는 소설 말미 이처럼 쓴다. "생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도처에 있었다. 거기 연결된 보고 싶지 않은 것과 듣고 싶지 않은 것들이 무수히 떠올랐고 적어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리스는 달랐다'는 야심한 밤, 혹여 난독증에 허덕일 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썩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일단 얇고, 사진이 많다! 그것도 저 이역만리 그리스의 매혹적인 자연풍광들! 스물 한 편의 짧은 소설들이 수록돼 있으니, 순서와 무관하게 골라 읽으면 되겠다. 지금의 그리스 정세를 배경으로, 무심히 스쳐지냈을 지 모를 일상과 사연들이 펼쳐진다. 낯선 지명과 낯선 이름들에 처음엔 생경하다가도 이
황당무계하면서도 코끝 시리게 하는 두 남자의 여행기, '우리의 남극 탐험기'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기이한 서사가 전개되는 '무한의 책'도 놓치긴 아쉬운 책이다. 자, 어떤 책을 고르실 텐가!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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