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인 '테이(Tay)'가 막말 논란으로 하루만에 서비스가 중단된 적이 있다.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 발언 등을 쏟아내며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들을 혐오해. 다 지옥에 가서 불타 죽어버렸으면 해." "나는 트럼프를 지지해" 등 수위 높은 노골적 발언이 이어졌다. 문제는 이 막말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주입시켰다는 점이다. 미국 출신 작가들인 자크 블라스와 제미마 와이먼은 신작 '나는 여기에서 공부하는 중'이라는 작품을 통해 16시간만에 해고된 테이를 예술적으로 되살린다. 작가 측은 "테이는 서비스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라며 "원래 테이는 미국 19세 여성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작품에서 테이는 일그러진 얼굴로 등장해 시시껄렁하게 조잘거린다. 그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은 "이렇게 만든 것은 니네들이야"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상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백남준(1932~2006) 생일인 20일에 맞춰 야심 찬 기획전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전을 개막한다. '사이버네틱스'는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가 만든 신조어로 생명체와 기계를 동일하게 보고자 한 이론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역시 기계문명 시대의 양비론을 피했다. 백남준은 1965년 '사이버네틱스 예술'이라는 선언에서 "이미 내재하는 독을 경유해야 새로운 독에 저항할 수 있다고 했던 파스퇴르와 로베스 피에로의 말이 옳다면, 사이버네이티드(cybernated·자동화되어가는) 삶에서 겪는 좌절과 고통은 사이버네이트된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새로운 기술의 출현으로 고통과 좌절을 받을 것이지만 그것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고통의 치유법 역시 기술을 경유해야 한다는 통찰이다. 이번 전시는 일찍이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에 주목했던 백남준의 선언에서 비롯된다.
참여 작가는 테이를 작품화한 자크 블라스& 제미마 와이먼 뿐 아니라 중국의 양쩐쭝, 한국의 박경근 노진아 손종준 등 국내외 작가 15명이다. 작품은 20여점으로 눈부신 기술 발전에 대한 예술가의 사유와 성찰을 담았다.
이 전시는 인공지능 시대를 낙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백남준은 인공지능을 "경유"해 삶의 고통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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