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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권해효(왼쪽부터), 조윤희, 김민희, 홍상수 감독, 배우 김새벽, 김형구 촬영감독 |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프랑스 영화지 포지티브의 편집위원이자 이 나라 대표 영화평론가중 한 명인 위베르 니오그레는 '그 후'를 관람한 뒤 "판타스틱한 작품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칸영화제 경쟁작 가운데 최고"라며 상찬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도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당황스럽고 때로는 수치스러운 연애담의 현재와 미래가 치밀하게 묘사돼 있다"며 찬사를 보냈다.
영화는 출판사 사장이자 문학평론가인 봉완(권해효)이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실내의 벽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그 후'가 상영된 시간대와 거의 동일한 오후 4시 29분.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냐"는 아내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봉완의 모호한 태도는 이 영화가 사랑이라는 테마를 축으로 한 의심과 위선, 기만의 변주곡임을 예고해놓는다.
홍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정지화면과 안정감있는 투숏은 '그 후'를 보는 이들이 편안하게 두 인물 간 대화에 집중하게 한다. 20세기 중반 모던 시네마를 연상케 하는 흑백영상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고풍스럽게 채색시킨다. 전날 공개된 홍 감독의 스무번째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가 명랑한 느낌의 귀여운 소품같았다면, '그 후'는 쓸쓸한 멜랑콜리의 정조와 홍 감독 특유의 유머와 재간이 적절히 조화돼 있다. 실제로 이날 상영 중간 중간 어처구니없는 대사와 상황이 빚어내는 유머에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이 많았다.
최근 몇년 간의 전작들과 달리 '그 후'는 남자 지식인을 내세운다는 게 외양상의 특징이다. 출판사 사장이며 문학평론가인 유부남 봉완(권해효)을 중심으로 세 여성이 위성처럼 회전한다. 봉완의 출판사 직원이자 옛 애인인 창숙(김새벽), 창숙이 회사를 나가자 새롭게 입사한 아름(김민희), 아름을 남편의 외도 대상으로 오인하는 봉완의 아내(조윤희). '그 후'는 이 네 인물 간에 벌어지는 작은 소동극이다.
한동안 홍 감독의 영화가 김민희에 대한 찬가로 여겨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면, 이번 영화는 그 족쇄를 조금은 풀어낸 것 같다. 남자 지식인의 위선을 꼬집는 모습은 그의 몇몇 초기작들을 연상케 한다. 지식인의 전형인 봉완의 말투와 행동은 자상하며 신사적이나 정작 속내는 비루하고 던적스러워 자주 실소를 자아낸다.
일상의 사소함을 포착해낸 몇몇 잉여의 장면은 예기치 않게 마음을 흔든다. 봉완의 옛 애인이 돌아와 출근 첫 날만에 잘려버린 아름이 영화 말미 몸도 마음도 누추해진 채로 택시를 탔을 때의 장면 같은. "갑자기 눈이 꽤 오네요"라며 택시 기사가 차창을 반쯤 열어젖히자 아름의 얼굴 저 위로 하얀 눈송이가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살포시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바라보는 이 순간의 아름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우며, 이 모든 걸 담아내는 홍 감독의 정지화면은 더 없이 시적이다.
이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권해효는 "내가 아는 한에서 홍 감독은 현장을 가장 완벽하게 장악할 줄 아는 분"이라며 "그 안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봉사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 후'의 수상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은 김민희는 "상 욕심은 없지만 '그 후'가 정말 좋은 영화이고,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다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김민희가 차지하는 의미를 묻자 "내 영화에 배우는 정말로 중요한데, 한국에서 밝혔듯 김민희는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며 그래서 더욱 많은 영감을 얻는다. 김민희와 작업하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칸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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