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솔직히 얘기하는 게 무슨 죄야"라는 생각이었다. 질타가 이어지면 "내가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민으로서 발언하는 건데"라는 억울함도 조금 있었다. 마음을 고쳐먹은 건 작년 10월.
"이제 나이도 있고 좀 점잖게 살아야겠구나, 약간의 위선도 필요하겠구나 싶대요. 내가 꽤나 주목받고 있었구나, 앞으로 조심해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달 반 전부터 페이스북을 뚝 끊었다는 공지영 작가(54) 얘기다.
'작가의 말'에 "나는 내가 쓴 글"이며 "생을 마치는 날까지 그러하겠다"고 다짐조로 고백하는 공 작가가 새 소설집을 냈다. '별들의 들판' 이후 무려 13년 만이다. 표제작까지 합하면 총 다섯 편이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공 작가는 이렇게 운을 뗐다.
"세월 참 쏜살같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쓴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13~14년이 막 흘러갔어요. 최근에 쓴 소설이 없는 것에 저도 좀 놀랐고요. 그간 장편에는 담지 못한 어떤 편린들, 장편에는 적합치 않던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담아봤어요."
올해는 공 작가가 소설 쓴 지 꼬박 30년째다. 1988년 가을 창작과비평에서 등단했으니, 소설가로서의 생애로 치면 서른 살. 그해 태어난 딸과 동갑내기다. 작가는 "표제작에 썼지만 상처받은 것들, 약한 것들, 어린 것들에 대한 지지와 연민이 서른 해를 관통하는 제 소설의 일관적 주제"라고 했다.
소설들엔 공지영의 페르소나로 짐작되는 인물과 화자들이 자주 나온다. 나르키소스의 면모가 엿보이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정말이지 스스로를 아끼고 또 아낀다. 하지만 이것이 이기주의로 환원되진 않는다. 타자와의 만남을 위한 첫 걸음으로서의 나르시시즘.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라야 타자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음을 공 작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랫만에 제 소설을 다시 보면서 내가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갔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 놀랐어요. 어떤 생의 굴곡진 모퉁이를 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삶의 어떤 바닥에서 책을 통해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 책을 그대로 내기로 마음먹었어요."
장편 위주로만 썼던 그다. 젊은 시절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탐독하며 "이렇게 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부풀었다. 단편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청탁이 오면 억지로" 썼다. 신인시절 두 편의 단편을 내고 곧바로 장편의 세계로 넘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공 작가가 데뷔 서른 해 만에 "단편의 새로운 매력을 찾았다"고 했다.
"좀 더 짧게, 상징으로 가득차게 쓰고 싶어요. 좀 더 우화적으로요." 생의 마지막 꿈이 있다면 "동화작가가 되는 것"이라던 공 작가는 "머리 속에 삶의 어떠한 햇볕이 비칠 때의 반짝이는 섬광같은 것, 어떤 각도에서 예리하게 반짝이는 그런 것들을 단편이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는 단편도 많이 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집필 중인 소설은 장편이다. 제목은 '해리'. 해리성 인격 장애에서 따왔단다. "악을 다루는 장편소설"이라 했다. "너무 실제적인 악들이 창궐하다보니 어안이 벙벙해 잠시 멈춰선 성태"라며 "올해 안에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간담회 말미 공 작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