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이나 성격, 말투까지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서 왔냐?"고. 이 질문이 수천 번 쌓여 남다른 좌절과 고뇌, 시련을 안겼다. 타인과 다른 외모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늘 설명해야 했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일찍이 마주했던 혼혈 작가 김제민(45).
그의 여덟번째 개인전 '원더-풀 라이프(Wonder-Pul Life)'전이 열리는 서울 통의동 아트팩토리에 들어서니 온갖 잡초들이 반겨준다. 강아지풀, 돼지풀, 망초, 씀바귀를 비롯해 이름 모를 잡초들의 향연이다. 고개가 꺾인 풀, 생선처럼 누워 있는 관상용 풀, 콘크리트 벽과 아스팔트를 뚫고 생명력을 과시하는 녹색 풀….
연필과 펜, 목탄으로 쓱쓱 그린 것이 드로잉과 수채화 느낌이 강하다. 유화처럼 밀도 있고 기름진 그림이 아니라 여백을 중시하는 동양화의 사군자를 닮았다.
그가 잡초를 부여잡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자화상도 그리곤 했는데 어느새 돌아보면 또 풀이 그려져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집요하게 자리잡고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풀들이 경이롭기도 하고, 때로는 어떻게든 버티고 살려고 안간힘 쓰는 모양새가 내 모습 같아 안쓰럽기도 합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초중고 모두 한국 학교를 나왔다. 미국에서 산 것은 어린 시절 잠깐이었다. 그를 키운 친할머니는 "넌 한국 사람이야"라고 주지시켰고 그 역시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괴리감을 느꼈어요. 차별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동화는 되지만, 제 외모가 호기심을 느끼게 하거나 의식하게 만들죠." 혼혈에 대한 편견과 관심이 지금은 덜해졌지만 그가 자랄 때만 해도 놀림과 상처를 받는 게 다반사였다. 잡초 그림이 상처 입은 그의 자화상인 동시에 다른 존재들과 자연스럽게 얽히고 싶은 마음의 풍경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처음엔 풍경에 주목하다, 이제는 풀 하나하나에 주목해요. 그들이 취하고 있는 삶의 전략이라고 할까. 길을 걷다가도 풀이 보이면 '스캔'하죠. 처음에는 풀의 의미에 초점을 맞췄다가 요즘에는 요상하게 생긴 것 등 형태적이고 구조적인 것에 끌린 달까요."
가난한 작가로 살기까지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끄적끄적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한번도 화가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고려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1년 어학연수를 하고 나서야 뒤늦게 미술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입시 미술을 시작했고 그 해 서울대 서양화과에 98학번으로 진학했다. 같은 대학에서 박사까지 밟았다. 또래에 비하면 7년이나 늦은 셈.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유일하게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을 하고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
이번 전시명이 '원더-풀(Wonder-Pul) 라이프'다. 언어유희가 빛난다. 번역하자면 '경이로운 잡초 인생' 쯤 될까. 그의 예술에 원더풀한 라이프가 펼쳐지길 소망해본다. 전시는 18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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