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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국 시인의 새 시집 '눈먼 자의 동쪽'은 이미지나 상상 속 동쪽이 아닌, 시인의 체화 속에 마련된 공간이다. 시인은 '숲의 다큐멘터리'에 독자를 초대한다.
2011년 시집 '파묻힌 얼굴' 이후 지난 6년간 써온 글 중 71편을 추렸는데 요즘 날씨처럼 매섭고 쓸쓸한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눈먼 자에게 동쪽은 시각을 제외한 이미지로 존재하는데 눈먼 자로 믿기지 않을 만큼 회화적이나, 눈이 아닌 다른 감각기관을 살아나게 할 만큼 비회화적이기도 하다. 시인이 장구한 다큐멘터리로서 시를 완성한 동력은 결국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고독의 힘이었다.
작품 해설을 쓴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눈먼 자의 동쪽은 맹목(盲目)과 적빈(赤貧) 사이를 걷는 이의 균형잡기에 비견된다"면서 "최근 이처럼 벅찬 메타시(어떤 속성에 관한 반성과 성찰을 추구하는 시)를 읽은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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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발전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의 기술은 어디로, 어떻게 흐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흐름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미래 전망에 대해 폭포수처럼 많은 책이 쏟아지는 요즘, '인에비터블'은, 절대 틀리지 않을 예언을 한다. 30년 뒤의 어떤 상품·상표·기술·기업 이름을 계시하는 게 아니라, 바뀌지 않을 흐름과 추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세상에는 모든 상품들이 바뀌는데 걸을 때 모양이 변하는 샌들, 디딜 때 모양이 바뀌는 바닥, 신발 역할을 하는 바닥 등 발의 확장된 일부로서 끊임없이 변형되는 과정이 된다는 식이다. 따라서 '신발 제조'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 '서비스'가 된다. 디지털 세계에서 정적이거나 고정된 것은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확실한 한 가지는 우리 모두는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으며,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금 이 순간보다 시작하기에 더 좋은 때는 없었다는 게 저자 켈리의 주장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미래의 추세를 12가지 관점에서 설명하는 이 책은 SF 영화만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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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1주기를 추모하며 선생이 남긴 말과 글을 모은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유고'는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과 강연 녹취록 등 기존의 저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이다. 선생의 깊은 사유와 내밀하게 세공된 언어를 다시 반추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석과불식,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의 언어'에 실린 글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光化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라는 부분은 마치 지금 상황을 예견한 듯해 읽는 이를 전율케 한다.
'손잡고 더불어―신영복과의 대화'는 선생이 생전에 행한 대담들을 모아 놓은 대담집이다. 오랜 영어(囹圄)의 생활에서 풀려난 직후인 1989년부터 타계하기 직전인 2015년까지 25년 동안 김정수, 정운영, 홍윤기, 김명인, 이대근, 탁현민, 지강유철, 정재승, 이진순, 김영철 등 가톨릭 사제, 경제학자, 철학자, 문학평론가, 언론인, 문화기획자, 과학자 등의 인터뷰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선생은 좌우라는 인간이 만든 어리석은 사상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중심의 교조주의를 벗어난 변방의 사상가로서 자유롭게 살다 가셨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길게 보면서, 먼 길을 함께 걸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 길에 동행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선생의 마지막 인터뷰가 가슴에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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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치를 주도했던 엘리트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켰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휩쓴 '트럼프 현상'과 관련해 설득력을 얻었던 분석이 바로 반지성주의다.
자기 성찰이 결여된 지성에 대한 반대, 지성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특권 계층에 대한 반감이자 반발이 '반지성주의'다.
저자는 아이젠하워, 레이건, 조지 부시 대통령 등 대중의 지지를 얻은 이른바 정치 아마추어가 주류인 지적 엘리트를 꺾고 정치를 변경하는 역사가 반복됐으며 미국 정치는 전환기에 반지성주의가 등장하는 전통이 있다고 말한다. 지성주의·반지성주의는 공존한다. 미국 사회를 뒤흔든 이 열병의 근원을 미국 종교사에서 찾아 그 기원과 역사적 전개 및 의미를 따라가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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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축성 100주년을 맞은 명동성당을 찾아 강론했던 법정 스님의 말이 담겼다. 약 두 달 전 길상사 낙성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찾아온 데 대한 답례였다. 7년 전 우리 곁을 떠나간 법정 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발자취, 타 종교와 두루 교류했던 이야기, 지인과 도반들에게 보낸 편지와 선시를 손글씨와 함께 엮은 책이다.
우리 시대의 선승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로서의 모습뿐 아니라 종교를 떠나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법정 스님의 행적도 만날 수 있다. 한 천주교 신자의 고백은, 법정 스님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대학 등록금을 대준 덕분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법정 스님을 찾아오는 독자 팬 중에는 유독 천주교 신자가 많았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천불교 신자'라고 지칭했을 정도라는 내용이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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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시집 8권을 냈던 마광수 시인의 40년을 정리한 시 모음집이다. 성적 욕망의 자유로운 표현과 진지한 문학적 탐구 등 시인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MBN 문화부 이상주기자] mbn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