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서울 예술단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30년 동안 수많은 작품과 많은 배우와 창작자들이 한뜻, 한마음으로 무대에 올랐고 크고 작은 변화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울예술단’만의 색이 짙어질 수 있었다.
서울예술단처럼 한 단체가 오랜 시간동안 작품을 함께 하면서, 관객들의 신뢰를 받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같이, 서울예술단 만이 지닐 수 있는 올곧은 힘과 명맥은 배우의 힘이 크다. 서울예술단을 거쳐 민간단체와 상업극에서 기량을 펼치고 배우도 적지 않은 만큼. 서울예술단 안에서 만들어 온 내공은 한국의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끼친 힘 또한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때문에 서울예술단에서 가장 오래 후배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 배우 고미경과, 활발한 활동과 함께 예술단을 잇는 큰 힘 박영수가 한 자리에 앉아 서울예술단의 30년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미경 배우는 만나자마자 후배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역할에 이입돼 감정의 컨트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어. 또 다른 이성적인 내가 바라본다고 생각을 해야 돼. 영수는 연습 때도 통곡을 하더라고. 목이 메어서. 무대에서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해.
Q. 두 분 모습 보니 굉장히 다정해 보이는데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나요
고: (미소) 영수는 내가 예뻐하는 후배예요. 이제 8년 정도 됐는데, 오디션을 번호를 기억해. 2번 맞지?
박: (쑥스러운 미소)
고: 영수를 보고 ‘바로 저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 예술단 이라는 생각이었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실력, 재치가 다 있었어요. 그 뒤로도 끊임없이 공연하는 것 보고 조언 도 하고 박수도 쳐줬어요. 정말 믿음직스럽고, 기댈 만하고 지켜봐주고 싶은 후배이자 배우예요.
박: (손을 내저으며) 선배님께서 너무 좋게 봐주셔서. 전 예술단에서 많이 배웠어요. 학교에서 배울 때는 잘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진짜 많이 깨지고, 혼나면서 성장했어요. 제가 선배님을 처음 뵌 건, 부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라는 작품이에요. 거기서 기념 티셔츠도 샀죠(웃음). 당시 서울에서 부산으로 와서 공연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대상까지 받은 작품이라 로망이었던 작품이죠.
고: 부산은 공연하러 자주 못 갔던 도시인데 거기서 봤네(흐뭇한 미소).
박: 제일 기수가 많은 선배님이셨는데, 무섭다고 어렵기보다 굉장히 열정이 많은 선배님이셨어요. ‘서랍이야기’라는 창작 작품에서 커피장사를 하셨는데 난리도 아니셨어요(웃음) ‘이런 거 좋아하고 잘 하시는구나’ 싶었어요.
고: 고귀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바람의 나라’ 때처럼. ‘태풍’은 한국뮤지컬 대상도 받았고 난 여우주연상도 받았어요. 뮤지컬 대상 받고, 딸을 출산 후 15개월 만에 작품에 오르기도 했는데, 궁전의 남자 광대 역할인데, 제 뚱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관객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원래는 청순가련 한 역할을 많이 했죠. 홍난파의 일대기를 그린 ‘영혼의 노래’에서도요. 30대 되고 아이 낳고 나니 색다른 역할을 한다는 행복을 안 것이죠. 제가 다양한 역할을 했는데 모두가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 행운이죠.
고: 물론 선배로서 무서웠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결혼을 하고 딸을 키우면서, 아이를 보니 우리 후배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넓은 마음의 엄마가 된 거죠. 점점 더 큰마음으로 인간적으로, 더 둥글둥글해 지는 것 같아요. 저는 결혼 안 한 배우들한테 결혼하라고 해요. (박영수의 손을 잡으면서) 결혼을 해야 해요. 특히 배우는 아기를 낳아봐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겨요. 저도 남편을 통해 남자들이 이해되고, 딸을 통해 포용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배우로 산다는 것이 행복하지만, 가정과 일을 함께 하기 때문에 더 행복함을 느끼죠. 싱글일 때 더 작품 연습을 많이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더 짧은 시간에 몰입해서 하려고 노력해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외에 더 열심히 해야 균형을 잡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후배들에게 얘기해요. ‘오픈 된 마음으로 만나라’라고요.
Q. 서울예술단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되나요
고: 배우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빼내고 나면 고갈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서울 예술단은 후배들에게 좋은 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점이 트레이닝이죠. 선후배가 항상 작품에 맞는 다양한 기능, 기예 등을 배워요. 항상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내일보다 모레가 더 나아진 다는 거죠.
고: 제가 나오는 작품 믿고 볼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거죠. 제가 외부 작품을 했지만 외국 작품은 안했어요. ‘라이선스를 하지 않겠다’라는 신념이 있었죠. 한국의 정서가 담긴 작품을 해야겠다는 제가 갈 곳과 예술단이 갈 길이 같은 셈이죠.
박: 저는 연기 하면서 감사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연기하고는 꼭 어버이날이고 생신이고, 제 생일에 꼭 연락하고 인사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감사한 마음이 작품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더 느끼게 돼요. 인물에 대해 공부하면서 사람을 더 알아가게 되면서 말이죠.
고: 저는 예술단에 있어 딸을 어머니께서 키워주셨어요. 저는 딸에게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일은 오소를 낳은 것이다’라고 하는데 딸은 ‘엄마가 제일 잘 한 게 나를 나은 것이라고 하니 나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엄마를 나은 할머니께 정말 감사한다’라고 해요. (이날 고미경은 딸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읽었고, 박영수를 비롯해 자리에 있던 사람은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박: 정말 따님이 좋은 정서를 가졌어요. 선배님이 아무렇지 않게 쿨하게 말씀하셨지만, 정말 감동받았어요. 저도 ‘작품에서 쿨하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울지 않아도 관객들이 느끼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말이에요.
고: (흐뭇한 미소) 예쁜 영수.
Q. 서울예술단이 30년이나 됐어요. 그 단체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울 거 같아요.
고: 88예술단으로 만들어진 단체예요. 86년 1월에 창단됐는데 무용수들도 있고. 남경주 등의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무용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분들도 많아요. 첫 작품이 ‘새불’이라는 음악극이었는데 다음 해부터는 뮤지컬로도 관객들을 만나기 시작했죠. 전 2기 때 영입 됐는데 첫 작품은 ‘한강은 흐른다’였고요. 김성기, 홍지민. 신영숙, 민영기, 김선영, 홍경수 등 기라성 배우가 서울예술단에서 트레이닝 받고 대학로 무대에도 올랐어요. 예술단이 한국 뮤지컬에 큰 역할을 한 것이고 배우의 산실이라 할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창작 뮤지컬의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해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죠.
박: 전 아직 8년 차지만, 서울예술단 식구들끼리는 정말 친밀도가 달라요. 예술의전당도 거의 집 같아요. 쉬는 날 빼고는 다 붙어있기도 하지만 그 마음이요. 그래서 작품을 짤 때 편하기도 해요. 돌려 말하지 않아도 준비가 빨리 진행돼요. 다양하게 시도도 할 수 있고요.
Q. 초창기 때 멤버들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나요
고: 초창기 80명 규모였다면 지금은 반 정도죠. 하지만 꽉 찬 느낌이에요. 배우 한 명이 가진 힘이 크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자신이 돋보이는 한 가지만 하면 됐는데 이제 어우러져 함께 모든 것을 하죠. 훨씬 더 예술단 높이 더 평가받고 차별성을 띠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배우들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대중적인 뮤지컬부터 ‘이름 봄 늦은 겨울’같은 가무극, 앞으로 막이 오를 ‘국경의 남쪽’처럼 연극성 강한 작품 등 모든 것이 가능한 단체. 무한한 힘을 가진 단체임이 틀림없죠.
Q. 많은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났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도 있나요
고: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주인공을 했던 ‘영혼의 노래’가 기억에 남아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바람의 나라’고, ‘태풍’도 워낙 대작이라서 기억에 남고요, ‘크리스마스 캐롤’도 다시 올랐으면 하는 작품이에요. 배우들이 행복해요. 음. 최고의 작품은 아직 만나지 않았어요(웃음).
영수: ‘크리스마스 캐롤’은 배우들도 행복한 작품이에요, ‘윤동주, 달을 쏘다’는 사실 시기적으로 안 좋을 때 작품인데,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죠.
Q. ‘윤동주, 달을 쏘다’의 윤동주 역과 박영수는 정말 잘 맞는 듯 했다
고: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면서) 영수는 영혼이 맑은 배우죠. 마음이 열려있는 배우라 상대배우를 다 받아주죠. 그게 좋은 배우에요. ‘윤동주, 달을 쏘다’가 힘들었을 거예요. 쉬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해서 목관리에 대한 아쉬움이 있죠.
박: 제 자신이 ‘이것만 해도 되는데’라는 것을 못 견뎌요. 감정을 못 이기는 거죠.
고: (고개를 끄덕이면서)그래서 영수 공연은 ‘와서 닿아요’. 가슴에 와서 닿는 거죠.
박: (미소)거칠게 닿아요. 깔끔할 수 있는데.
고: 더 익으면 될 거야 너의 방법이니까.(흐뭇한 미소)
Q. 두 분 목관리는 어떻게 하시는 편인가요
고: 출 퇴근 길에 1시간 정도 목을 풀어줘요.
박: 선배님은 진짜 목관리를 잘 하세요. 한 번도 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는 남에게는 관대한데 저한테는 그게 안 되어요. 목이 안 좋아도 공연을 하고 말아요.
고: 배우로 사는 삶이 행복할 뿐이에요(웃음).
Q. 박영수 배우 처음 만났을 때 진가를 알아보셨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더 듣고 싶어요.
고: 발레리노 의상을 입고 등장했는데, 영수가 팔 다리도 길고 그렇잖아요. 특히 사마귀 흉내를 냈는데 그때 느낌이 왔죠. 진가를 알아봤어요.
Q. 사마귀라니. 곤충 사마귀 말하는 건가요?
박: 한 달 동안 연구했어요. 우연히 사마귀를 보게 됐는데 그 움직임을 보고 동영상을 찍어서 관찰했어요. 사마귀가 가만히 있을 때, 뭔가를 잡았을 때, 건드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이요. (사마귀의 포인트를 몸소 내보이면서) 그 공간이나, 움직임, 질감과 밀도를 유심히 봤어요.
Q. 30살이 된 서울예술단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나요
박: 전 서울예술단 30년에 3분의 1정도 몸담았지만, 영원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가 세상을 떠나도 그 이후에도 영원했으면 해요. 제가 몸담고 있는 이 단체가 ‘역사속의 단체’로 묻히는 게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었으면 해요. 시대를 반영하고, 관객들 생각과 이념을 생각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 예술가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인기가 아니라 그 방향성에 부합하는 단체예요. 앞으로도 시대를 반영하는 단체가 됐으면 하는데, 이 힘은 관객들에게서 나와요. 위험했던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고요. 관객들이 만들어 가는 부분도 큰 힘이 되니 듣고 싶은 것도 많이 알려주셨으면 해요. 관객들이 이끌어 주면 저희도 더 좋은 공연을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고: 임신한 상태에서 ‘애니깽’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칼을 드는 역할이었어요. 뱃속의 딸에게 ‘엄마 지금 연기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연습한 기억이 나요. 6개월 공연하고 100일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그 기간 빼고는 모든 작품에 올랐어요. 서울예술단은 제 인생이고, 송두리 그 자체죠. 제가 이 세상에 없게 되는 그날도 길이길이 남아서 한국 최고의 단체가 됐으면 해요.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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