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머잖은 미래. 편도로 꼬박 120년 걸리는 여행상품이 있다.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기 위해 나선 5천 명을 태운 우주선 아발론호는 오늘도 우주를 순항중이다. 이때 캡슐 속에서 동면중이던 수많은 승객 중 한 남자가 우연히 먼저 잠에서 깬다. 도착하려면 아직 90년이나 남은 상황. 의문의 사고로 깨어는 났지만 다시 동면에 드는 방법을 모르는 남자와 뒤이어 깨어난 한 여자는 있을 건 다 있지만 살아 숨쉬는 인간만은 없는 거대한 우주선 속에서 홀로 늙어 죽을 운명을 마주하곤 절망에 빠진다.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주는 이 신비롭고도 무서운 설정은 단숨에 구미를 당긴다. 게다가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스타덤에 오른 모튼 틸덤 감독의 신작. 여기에 할리우드 톱스타 제니퍼 로렌스와 크리스 프랫의 아름다운 얼굴이 포스터에 큼지막이 박히고 "찾아야 한다, 깨어난 이유를"이라는 사뭇 비장한 카피까지 더해지니 관객의 호기심은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웬걸, 막상 베일을 벗은 영화 '패신저스'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모양새였다.
우선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엉성한 플롯이 문제다. 두 배우의 존재감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 트레일러나 홍보문구를 접한 관객들이라면 자연히 극중 여주인공 오로라 레인(제니퍼 로렌스)에게 남주인공만큼의 활약상을 기대하게 된다. 적어도 남주인공 짐 프레스턴(크리스 프랫)이 그랬던 것처럼 '미스터리'한 이유로 먼저 동면에서 깨어나 함께 그 원인을 찾아나설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는 영화 초반 고독에 몸부림치던 짐이 자신의 이상형과 가깝다는 이유로 오로라를 일부러 잠에서 깨우는 장면에서 산산조각난다. 이를 모른채 짐과 연애하게 된 오로라가 진실을 알게된 후 잠시 저항할 뿐 다시금 그와 사랑에 빠지고, 곤경에 처할 때마다 무력하게 남주인공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두고 영미권 평단에서는 "오싹한 스토커 행동이라는 패착"(영국 가디언지), "SF 버전의 스톡홀름신드롬 "(미국 엔터테인먼트위클리) 등의 혹평이 쏟아졌다.
로맨스와 우주재난이 결합된 색다른 재난영화를 표방했다지만 결과적으로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로맨틱하다기엔 설득력이 부족하고, 재난물이라기엔 재난의 발생과 극복과정이 너무 단순하고 뻔한 탓이다. 비슷하게 소수의 인물이 이끌어갔던 '그래비티''마션' 등의 우주재난물이 상상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고도의 스릴감을 안겨줬던 것과 대비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는 제한된 캐릭터 설정 안에서도 빛난다. 인공지능 바텐더 로봇 역을 맡아 극 중간 중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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