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천명관 [한주형 기자] |
“그러니까, 문인이에요, 영화인이에요?” 이거 뭐, 좌우 사상검증도 아니고 조금 어이없다는 듯, 우문의 엄습에 피식대던 그는 주저없이 이렇게 즉답하는 거였다. “박쥐인데요.” 기자가 어리둥절해 하자 그는 안타까운듯 몇 마디 덧붙였다. “아니 뭐, 낮에는 새였다가 밤에는 쥐였다가 그렇다고요. 문단에서는 너, 우리 동네 사람 아니잖아, 그래요, 영화판 가도 그러고. 갈 데가 없어요.”
천 작가의 삶이 기구했던 건 익히 알려진 바. 젊은 시절 골프숍 점원, 보험사 영업사원 등 거의 “안 거쳐본 데 없었다”던 그는 나이 서른이 넘은 뒤에야 영화판에 뛰어든다. 1992년 ‘미스터 맘마’의 극장 입회인에서 출발해, 영화사 직원을 거쳐 마음 가 닿는 대로 시나리오를 썼으니, 그 중 일부는 ‘총잡이’ ‘이웃집 남자’ ‘고령화가족’ 등 영화화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봐 준 건 (아직까진) 문학이었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2004)로 일순간 문단의 혜성처럼 떠오른 거다.
이번에도 그는 소설을 썼다. ‘나의 삼촌 부르스 리’ 이후 4년 만이다. 제목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지난 3월부터 카카오페이지에 4개월 간 연재한 걸 묶은 것이다. “뭐, 딱히 실시간 댓글 반응 같은 건 신경 안 썼어요. 이미 ‘와꾸’ 다 짜 놓고 썼거든요.” 그는 “제목은 맨 앞장에 껴 놓은 제임스 브라운 노래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며 “말 그대로 그냥 인천 뒷골목 날건달 이야기”라고 했다.
소설은 285페이지로, 마음만 먹으면 하룻나절에 다 읽는다. 그만큼 가독성이 좋다. 입말체의 달인인 천명관 세계의 늪에 빠지면 그날 하루는 볼 일 다 본 거다. 한 노회한 조폭을 중심으로 인생의 한방을 찾아 헤매는 날건달들의 비루하고, 치사한, 한편으로 우스꽝스런 블랙코미디가 펼쳐진다.
“제가 아는 세계가 그런 걸요. 소위 책상물림이 아니니까. 책상물림은 책상물림 글만 써요. 제 소설엔 지식인이 없어요. 보통 한국 소설 주인공들, 다들 대학·예술 언저리 인간들이잖아요. 홍상수 감독 영화도 그렇고. 뭐랄까. 밑바닥 이야기를 써야한다는 당위가 있어요. 약간의 의지, 이끌림 같은 거.”
그는 제 소설을 “문학이라 여기면서 쓰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가볍게, 널리 읽히게 썼다”며 ‘90년대 조폭코미디의 유산’이라 표현했다. “영화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봤죠? 한국 조폭코미디물의 대명사. 그거랑 비슷해요. 옴니버스식으로 여러 인물들 얘기가 나와요. 예전에 영화로 만들려던 거 다 우겨넣었어요. 밀수 다이아몬드 사건, 종마 사건, 뜨끈이 잡는 사건….”
이번 책이 재밌는 건 숨가쁘게 지나가는 스토리 외에 맛깔나는 이름들도 한몫한다. 한번 들으면 인이 박인듯 좀체 안 잊혀진다. 설렁설렁 읽었다가 누가 누군지 파악하느라 앞장 뒤적일 필요 없다. ‘울트라’ ‘뜨끈이’ ‘루돌프’ ‘박감독’ ‘양사장’…. “뒷 골목 세계를 왠지 희화해보고 싶었어요. 평범한 이름은 잘 기억 안 나잖아요. 반면 별명은 그 인물 이미지를 연상해주죠.”
천 작가의 다음 작업은 뭘까. 소설일까 영화일까. 이번엔 후자란다. 길고 긴 박쥐생활 끝에 드디어 메가폰을 잡는단다. 영혼의 짝, 김언수 작가(44)의 장편소설 ‘뜨거운 피’를 영화화하게 된 거다. 천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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