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수 화백 |
백영수가 누군가. 해방 후 처음으로 결성된 서양화가 모임인 신사실파 멤버 아닌가.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새로운 표현을 추구했던 신사실파 그룹에는 김환기와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이 포함됐다. 그는 신사실파 동인 중 막내 작가로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 있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두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대학까지 보냈다. 해방 후 돌아와 신사실파 작가들과 작업하다 1977년 프랑스 파리로 가 그곳에서 33년간 체류하고 최근 고국에 들어왔다.
그는 정겨운 ‘모자상(母子像) 작가’로 알려져 있다. 화폭에는 단순하고 정감 어린 타원형 둥근 얼굴의 아들과 어머니가 있다. 머리를 갸우뚱 기울이고 있는 형상이다.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남자 아이와 정신적 안식처인 어머니, 또한 벗으로 추정되는 새가 등장한다. 서정적이고 단순한 화면 구성이 장욱진, 이중섭과 묘하게 닮았다.
시대의 역경을 온 몸으로 체험한 그의 화폭은 비움의 화폭이다. 몇 개의 선을 그리고 여백을 강조한다. 중간색을 주로 써 시각적으로 요란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다. 우화 같은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작가가 모자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작고하신 즈음부터다. “아이하고 엄마는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어요. 아이는 엄마 품을 생각하고 엄마는 아이를 영원히 잊지 않지요.”
벽에 걸린 총 40여 점의 작품 중 신작 25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작가가 이전에 작업한 작품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제작한 드로잉과 콜라주 작품 25점이 전시된다. 신작은 마치 그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듯 색깔 펜으로 기하학적 선을 긋기도 하고 색종이를 오리거나 찢어 붙여 꼴라주를 만들었다. 부인 김명애(68) 씨는 “남편이 겨울에 굉장히 건강이 안 좋았다. 선도 하나 못 그을 정도였는데도 이를 악물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림을 그리더라”라고 전했다. “다른 사람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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