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한 데모시위로 일부 학생들이 교문 앞을 가로막을 때 그녀는 자신의 수업권의 정당함을 들며 그 교문을 뚫고 들어간다. 그런 다음 여느 때처럼 루소의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철학을 사랑하며 그 학문이 주는 지적인 충만감을 삶의 동력으로 삼는 그녀는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왔을 땐 두 남매의 온화한 어머니로 돌아간다. 30여년을 함께 한 남편에게는 다정한 아내로서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며, 주기적으로 모친의 집을 찾아가 그녀의 말벗이 되어주는 일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예기치 않은 변수로 삶의 전환기를 맞는다. 한평생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하리라 여겼던 남편으로부터의 갑작스런 이별 통보(이 남편은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에 대책없이 무책임하다). 무심한 표정으로 아내를 기다리던 그는 그녀가 귀가하자마자 새 여자가 생겼음을 건조하게 털어놓는다. “여보, 나 다른 사람이 생겼어. 집을 나가려고 해.” 쇼파에 걸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려던 아내는 그 잔인한 말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아, 이 배신감을 어찌해야 할까. 이제 그녀는 좋든 싫든 제 삶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감독 미아 한센 러브)은 한 중년 여성의 안온하던 일상에 불현듯 침입한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그녀 내면의 미세한 변화들에 주목하는 영화다(미아 한센 러브가 실제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의 느닷없는 이별 통보, 그리고 그 이후 병든 모친의 가엾은 죽음 등. 물론 그녀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가늠하기 힘든 상실의 아픔 아래 신음할 법한데도, 이 여성은 그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녀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떠난 뒤에도 식탁 위에 꽃을 갖다 놓고, 자신이 빠뜨린 쇼펜하우어 책을 챙겨달라던 전 남편의 뻔뻔스러움에 처음엔 분개도 하고, 한 두번 눈물도 훔치지만, 그게 다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그녀를 상실의 슬픔에 젖은 비운의 여성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35세 여성 감독 미아 한센 러브의 카메라는 나탈리로부터 통속적인 감상주의를 끌어내는 법이 없다. 다만 제 삶에 불어닥친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그녀의 강인한 내면을 프랑스 최고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를 빌어 세밀하게 포착해내는 것이다. “남편은 떠났고, 아이들은 독립했지만, 이토록 온전한 자유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어.” 철학이 이성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학문이라면, 그런 철학을 신봉하는 나탈리는 제 삶을 구원하는 건 결국 스스로여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이 아끼는 명석한 제자 파비앙과의 지적 교류를 이어가고, 외롭게 살다 간 모친의 늙은 고양이 판도라를 거둬들인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딸이 출산을 했을 땐 할머니라는 또 하나의 역할을 그녀는 기쁨으로 맞는다. 그런 식으로 강물이 흐르듯, 나탈리를 둘러싼 삶의 환경은 천천히 변한다. 그 움직임을 마주하는 그녀의 삶 또한 천천히 나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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