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뮤지컬 ‘사춘기’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단번에 ‘마이버킷리스트’에서 주연 해기 역을 꿰찼다. 그러더니 ‘풍월주’ ‘베르테르’, 그리고 ‘스위니 토드’까지, 그야말로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배우 김성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성철은 소극장, 대극장 작품 외에도 ‘손탁호텔’ ‘2016 전설의 콘써트 with 집들이’ 뿐만 아니라 ‘안녕! 유에프오’ ‘탄산소년단’ 등에도 이름을 올렸다. 조금도 쉬지 않고 다양한 무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스위니 토드’ 출연 역시 마찬가지다. 대극장과 소극장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행보는 가늠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대극장은 배우들의 에너지를 보여주고, 극 전체적인 연출, 무대, 조명 등 기술적인 부분이 드러난다면, 연극은 배우간의 호흡과 드라마 중점인 것 같다. 대극장, 소극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안녕, 유에프오’는 정말 좋았다.”
대극장에서는 안정감 있는 연기와 상대 배우와의 호흡, 폭발적인 성량으로 압도하는가 하면, 소극장에서는 그 쫀쫀함을 놓치지 않게 극을 가득 메우는 재기발랄함이 있다. 김성철에게는 그 무대에 맞게 자신을 채울 줄 아는 영악함이 있었다.
“몸이 막 끓더라. 정말 너무 무대에 오르고 싶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전주가 시작하자 ‘내일도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도 들고. 나에게 무대 한 회 한 회는 정말 ‘너무나’ 소중하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라는 마음이다.”
인터뷰 당시 다리를 다친 김성철은 무대에 오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라는 마음이라니, 이렇게 뜨거운 열정이 있을 수 있나. 그토록 절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내가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아쉬움이 남지 않나. 가슴이 아프다. 내가 좀 짓궂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 감정에 진실하고, 호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김성철을 보면 ‘개구쟁이’에 짓궂고, 까불까불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다보면, 이토록 절실하고 열심일 수 없다. 거기에 ‘즐기는’ 마음이 베이스로 깔리니, 금상첨화다.
그렇기 때문일까. 김성철의 무대는 그야말로 수직곡선을 타고 상승 중이다. 마치 대극장이 두 팔 벌려 기다린 배우처럼, 소극장 무대를 재치와 능청, 여유로 김성철 만의 캐릭터를 만들더니, 대극장에서는 들끓는 열정과 피어오르는 실력으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 무대는 ‘스위니 토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스위니 토드’는 19세기 영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며, 한때 아내와 딸을 보살피는 가장이자 건실한 이발사였던 벤자민 바커가 그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터핀 판사를 향한 복수를 그리는 작품이다.
“‘스위니 토드’ 이렇게 좋은 수가. 정말 너무 좋은 작품이다. 노래와 작품 분위기는 ‘말도 안 된다’. 하루하루가 좋다. 공연하면 분장실에 있지 않고 소대(등/퇴장로)에서 배우를 보는 편인데 볼 때마다 매번 재밌다. 명작에는 이유가 있나보다.”
극 중 토비아스(이하 토비)를 맡은 김성철. 토비아스는 피렐리의 조수였으나 러빗 부인(이하 러빗)의 파이가게를 돕는 인물이다. 러빗을 연모, 사모하지만, 극이 치달을수록 감정은 격해진다. 감정 표현의 기복이 큰 셈이다.
“감정의 기복 끝판왕은 ‘베르테르’ 카인즈였다. 극한의 감정을 다 표현해야 하는 인물 아닌가. ‘다시는 이런 캐릭터를 만날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정말 힘들었다. 토비는 극한의 감정보다, ‘교류’다. 러빗과의 교류. 토비의 연관검색어는 러빗 아닌가. ‘연모’ ‘사모’하고 러빗의 말에 100% 순종하는 인물이다.”
“계단에서 ‘Not While I'm Around’이라는 노래를 할 때, 러빗을 보고, 들으면 저절로 감정이 잘 생긴다. 난 밖으로 표현을 잘하는 배우는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게 더 주는 편이다. 그게 연기 지점이기도 하고, ‘내가 아닌 우리를 보여줄 때’ 관객들이 더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토비는 러빗이 하는 말이면 다 들을 뿐 아니라, 그를 진심으로 대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는 단정해 해석할 수 없는 미묘한 지점이 있지만, 어떤 색이던 ‘사랑’, 혹은 ‘사랑’ 비슷한 감정이리라.
“누가 그러더라. ‘이승원은 러빗을 향한 마음이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인데 나는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엄마도 아니고 거둬준 여인 아닌가. 사랑을 단정 짓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전 아줌마를 위해서라면 거이던 나쁜 놈이던 맨주먹으로 쭉쭉’ 이런 대사는 그런 감정이 ‘진짜’여야 나올 수 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어느 누구라도 맞서 싸운다는 마음이니까. 가끔 관객들이 웃는데, 나 역시 너무 좋다. 그만큼 순수함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니까.”
토비는 채울 게 많은 인물이다. 왜 피렐리의 조수가 됐는지에 대한 과거, 또 러빗에 대한 감정 뿐 아니라, 후반부로 갈수록 그가 격해질 수밖에 없는 감정에 대해서도.
“아마 토비는 토드를 보고 ‘이 사람이라면 러빗을 해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한 거고. 그래서 ‘아저씨, 그러면 안 돼요. 아무도 해치면 안 돼요’라는 말을 한 거다. 나 역시 그 감정이 들었고, 그 감정으로 꽉 차 있다.”
“토비는 분명 시체 더미를 봤을 거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겠지만, 그 상태에서도 러빗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괴로워서 죽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러빗에 대한 마음이 컸으니. 인육을 갈아야 하는 고정도, 러빗이 알려준 것 아닌가. 처음에는 무서웠겠지만 러빗 부인이 알려준 것이니 토비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상식을 뛰어넘는 감정 아닌가.”
채울 것이 많은 토비아스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드러났다. 순수한 그의 눈빛에서 광기가 흐르기까지의 감정라인을 꽉 채우고 있었다.
“정말 찾아낼 게 많았다. 앞서 어리고 순수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사실 순수하고 단순한 역할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울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가치관이 성립되기 전이라 순수하다. 이성을 지우면 순수한 아이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집중도 높아야 하고. 하지만 이성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뭔가를 갈구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게 지금은 좋다.”
특히 ‘스위니 토드’의 넘버는 어렵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곡으로, 잘 짜인 불협화음처럼, 어울리지 않은 음이 마찰해 독특함으로 빚어졌다.
“연습할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자가 왜 이렇지’ ‘음이 랩 같다’ ‘어디서 숨을 쉬지’ 등의 생각이 들었는데 하면 할수록 진짜 재밌다. 러빗과 부르는 노래는 대사처럼 표현해 오히려 더 좋다.”
김성철은 연기, 소리, 상대배우와의 호흡,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 조승우, 전미도, 양준모, 옥주현 등과 같이 출연해도 그 안에서 자신 만의 존재감을 톡톡히 발휘해, 눈길을 더하니 말이다. 그를 보면 마치, 만화 속에 등장하는 연습하지 않아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무대 뒤에는 끊임없는 연습이 있었다. 물론 그 연습은 기본이고, 김성철이 집중하는 것은
“소리보다 상황에 집중하는 편이다. 소리에만 집중하면 내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보다 줄어든다. 노래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믿고 가는 것이고, 상대 컨디션도 있고 이를 봐야하는 것도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노래 베이스다. 연습을 많이 하면 두려운 게 없다.”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