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영 기자> |
연 감독은 사실 실사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간 찍은 영화가 모두 애니메이션(이하 애니)이었다. 연상호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알린 건 ‘돼지의 왕’(2011). 학교 폭력 실태를 날카롭게 들추며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다(이건 한국 장편 애니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밖에‘창’(2012)은 군대문제를, ‘사이비’(2013)는 종교문제를 다루는 등 한국 사회의 이면을 해부해왔다.
‘영화계 맑스’라 불리던 그가 첫 실사영화로 ‘부산행’을 낙점했단 소식은 그래서 더욱 화제였다. 제작비 5억원 미만의 사회파 애니만 연출했던 사람이 100억원대 상업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었다. “‘점점 실사영화 한 번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아졌어요. 마침 ‘서울역’(‘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미개봉)의 실사판을 찍어보자는 NEW의 제안이 왔죠. 똑같은 영화는 별로인 것 같아 ‘서울역’의 바로 다음날, KTX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역제안했고요.”
한국 최초의 좀비물. ‘부산행’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장르영화계 최초의 좀비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장르 영화 영토가 그리 넓지 않은 편으로, 스릴러 장르의 보편화도 얼마되지 않았다. ‘텔미섬띵’(1999) ‘살인의 추억’(2003)이 거의 최초의 스릴러 영화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만큼 장르 영화가 발전된 건 아니잖아요. ‘살인의 추억’이 나오기 전만 해도 ‘한국에서 스릴러물을 만든다고?’라는 편견이 많았죠. 물론 그 이후 잘 자리 잡았지만요. 이번 영화가 또 한 번 장르적 지평을 넓히길 바라요.”
‘부산행’을 여느 할리우드 좀비물의 아류 쯤으로 속단해선 곤란할 것이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Z’(2013)와 비교하는 시선이 많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한 사회의 인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에게 쫓긴다는 외형만 흡사하다. ‘영웅주의’와 선을 긋고 있는 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성인데, 극중 석우(공유), 성경(정유미), 상화(마동석), 용석(김의성), 진희(안소희) 등은 어느 하나 대단할 게 없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
“‘월드워Z’는 전형적인 히어로물이잖아요. ‘부산행’은 그 반대에요. 일상의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얘기하거든요. 영웅적인 인물이 재난을 해결하는 게 아닌, 아주 개미같은 존재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요.” 그는 ‘부산행’의 좀비들 또한 많은 사회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했다. 순전히 나쁜 존재라고 생각하진 않는단다. 분장 및 연출 당시 (좀비 연기자들이) 단순 괴물처럼 비치길 원치 않은 이유다. “다들 한 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잖아요. 다친 사람들, 아픈 사람들, 극단의 상황에 처한 인간들이라는 개념으로 보고 싶었어요.”
유년 시절, 애니란 애니는 빠짐없이 챙겨봤던 ‘애니 덕후’ 연상호. 만 18세에 이르러 동네 비디오방을 기웃거리던 그는 음침한 칸막이 방에서 에로비디오란 에로비디오는 남김없이 섭렵했다고 한다. 더 이상 볼 만한 게 없다고 판단, 드디어 눈길을 돌린 게 걸작 고전 영화들.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1925), 독일 표현주의 걸작 ‘칼리가리 박사’(1919)도 이때 다 봤다. 그리고 일년 뒤, 그는 6개월 간 첫 단편 애니 하나를 홀로 완성시킨다. 제목은 ‘D의 과대망상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막 치료를 끝낸 환자가 보는 창밖풍경’(1997).
괴짜 연상호는 “내 이름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부산행’이 신선한 경험으로 각인되길 바란다”고 했다. 젊은 10대들을 특히 염두해둔 발언이었다. “어렸을 때 ‘로보캅’(1987) ‘터미네이터2’(1991)를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거든요. 영화의 완성도와 힘, 당시 열광하며 본 저같은 사람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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