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있는 힘껏 오만상을 찌푸린 채 킹콩처럼 쿵쿵 걸어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주먹질에 발차기는 기본, 기타를 닮은 만돌린으로 사람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키기도 한다. 무지막지한 횡포에 시달리는 무대 위 인물들의 표정은 애처롭지만 바라보는 관객들 사이에선 폭소가 멈출 새 없다.
발레계의 자타공인 ‘엽기적인 그녀’가 돌아온다. 오늘부터 오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의 희극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통해서다. 남녀 주인공의 비극적 사랑을 표현하는 여리고 섬세한 연기, 혹은 요정이나 백조들의 춤처럼 현실 세계와 거리가 먼 동화적 이미지를 우아하게 드러내는 몸짓 등이 보편적인 수많은 발레 중 단연 튀는 존재감이다. 지난해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아시아 발레단으로는 최초로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 등 고전발레 레퍼토리에 익숙한 국내 관객들 사이에서도 90% 이상의 높은 판매율을 기록하며 당시 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전설적 안무가 존 크랑코의 대표작 중 하나다. 중세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천방지축 왈가닥 여자 카타리나와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온순한 아내로 바꾸려는 새신랑 페트루키오 간의 우여곡절, 얌전한 그녀의 여동생 비앙카와 결혼하려고 안달 난 청년들이 벌이는 소동이 2막에 걸쳐 펼쳐진다.
1960~1970년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활약한 크랑코는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로미오와 줄리엣’‘한 여름 밤의 꿈’,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등 주옥같은 문학작품들을 명쾌하고 극적인 안무의 드라마 발레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주인공 카타리나 역은 강수진 단장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대표 역할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발레리나들처럼 발끝을 꼿꼿이 세워 공중에 떠있는 듯 길고 여린 자태를 보이는 대신 작품 속 카타리나 역의 무용수는 발목을 한껏 꺾은 채 우악스러운 촌부처럼 세차게 무대를 누빈다. 여느 무대와 달리 예쁘고 달콤하게 보이려는 의도 없이 제대로 망가져보이는 모습이 발레 팬들에게조차 신선하게 다가온다. 극중 페트루키오가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아내를 ‘길들이는’ 모습이 현대 여성 관객들에게 다소 불쾌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춤의 특성상 대사가 없어 원작보다 그 정도는 약하다. 후반부 카타리나가 점점 온순해지면서 페트루키오와 선보이는 아름다운 파드되는 반전의 매력이 있다. 비앙카와 그의 구혼자 루첸시오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춤도 극에 생기를 더한다.
이번 국립발레단 공연에서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콘스탄틴 알렌과 김지영, 신승원과 김기완, 이은원과 이재우 세 커플이 번갈아 가며 주역을 맡는
공연은 23~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7-6181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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