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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뮤지컬 ‘위키드’의 개막을 앞둔 아이비(33)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 같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대중 가수로는 11년, 뮤지컬 배우로는 6년차. 이제는 무대 위, 그리고 관객들과의 만남이 편안해졌을 법도 한데, ‘위키드’는 그녀에게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아이비는 ‘위키드’를 두고 ‘크나큰 기회이자 시련’이라고 했다.
지난달 18일, 대구에서 드디어 ‘위키드’의 막이 올랐다. 이미 금발마녀 ‘글린다’로 관객들과 호흡 중인 그녀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상징과도 같던 ‘섹시’를 내던지고, 힘겨웠던 시간을 모두 이겨낸 그녀의 변신이 궁금했다. 천진난만하고 철딱서니 없는 ‘푼수 떼기’ 글린다는 그녀에게 정말 어울릴까?
3개월 뒤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다시 아이비를 만났다. 그녀에게 관객들을 만난 소감을 물으니, “첫 공연을 앞두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이 막 떨렸어요. 무대 위에서 연기하다 보니 어느새 안정감을 찾게 되더군요. 생각보다 관객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행복합니다”며 밝게 웃었다.
초연 당시 엄청난 흥행으로 뮤지컬계를 놀라게 했던 ‘위키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발칙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고난이도 뮤지컬 넘버들이 대부분인 만큼 가창력과 연기력은 필수, 동화적 의상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 관리와 과하지 않은 ‘균형미’가 관건이다.
“소문대로 정말 혹독한 훈련이었어요. 워낙 거대한 작품이다 보니 준비할 게 많았고 모든 면에서 강도가 높았죠. 차츰 하나, 둘씩 맞춰지고 역할에 몰입되면서 즐거움을 찾게 된 것 같아요. ‘글린다’를 통해 어렸을 적 꿈꿨던 ‘바비 인형’의 환상(?)을 현실로 이룬 것 같은 만족감? 하하!”
초연에서는 ‘뮤지컬 디바’ 옥주현과 정선아가 각각 초록마녀(엘파바)와 금발마녀(글린다)로 분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인 바, 올해에는 아이비(글린다 역)와 차지연(엘파바 역)이 새로운 얼굴로 발탁됐다. 일각에서는 아이비의 캐스팅을 두고 ‘함량 미달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만난 아이비표 ‘글린다’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 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이비의 재발견’이라는 찬사가 이어졌고, 팬들 역시 그녀의 놀라운 변신에 연신 환호를 보냈다. “정말 이를 갈고 준비했나보다”는 말에, 그녀는 “실제 모습은 ‘글린다’와 너무 달라서 어떻게 나를 입혀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좋아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다”며 민망해했다.
“저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사실 ‘글린다’처럼 주목 받는 걸 좋아한다거나, 공주 같은 스타일이 전혀 아니에요. 뭐랄까, ‘글린다’를 연기하다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나 할까요? 얄미운 부분도 참 많은 아이죠. 이 아이를 어떻게 잘 연기할까 고민하다보니,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그 순수하고 예쁜 마음이 좋더라고요. 제가 닮고 싶을 정도니, 이런 부분을 잘 담으면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겠다’고 생각했어요.”
걱정과 부담감 탓에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위키드’. 아이비는 이제야 자신의 무대, 작품과 캐릭터, 쏟아지는 박수를 제대로 느끼는 듯 했다. 도전이었던 ‘위키드’는 이제 진정한 성장의 일부가 됐다.
“‘위키드’는 현실과는 다른 환상의 세계를 다루지만 그 속엔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있어요. 우정, 사랑, 성장, 편견 없는 세상 등 우리가 잊고 살기 쉬운 근본적인 것들을 다시금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죠. 누구나 한번쯤 ‘놀이공원’에서 실컷 놀고 즐기며 보낸 기억을 간직하고 있잖아요? ‘위키드’는 그런 아련한 행복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공연이에요.”
극 중 자신밖에 모르던 ‘글린다’는 각종 시련을 통해 점점 성장해간다. 사랑과 우정, 진정한 선과 악, 불필요한 선입견에 대해 깨닫는 과정은 동화이지만 적잖은 감동을 선사한다. 아이비는 “‘글린다’의 성장을 공부하고 연기하면서 배우로서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위키드’ 무대에 오르면서 제 삶도 작품을 통해 더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멋지고 뛰어난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배워가는 과정이 즐겁고 뿌듯하더라고요. 그간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제 모습을 ‘위키드’를 통해 조금은 보여드린 것 같아 정말 기뻐요.”
끝으로 이전 만남에서 물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위키드’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 목표가 무엇이냐고. 그녀는 이전보다 한층 여유롭고 행복한 미소로 답했다.
“좋은 공연을 만나, ‘글린다’로 이렇게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것만으로도 꿈을
뮤지컬 ‘위키드’는 오는 19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 된 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7월 12일부터 8월 28일까지 7주간 공연을 이어간다.
[디지털뉴스국 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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