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문학의 원형은 구인회(九人會)가 아닐까.
1930년대 이효석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이상 김유정 등 9인이 ‘모더니즘’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고, 그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예술에 골몰했다. 구보(丘甫/仇甫/九甫) 박태원(1910~1986)이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도 그 중 하나였다.
아버지가 쓴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맏아들 박일영(77)이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문학과지성사 펴냄)은 ‘경성 모던뽀이’였던 아버지의 구인회 동인을 그린 정물화같은 책이다. 아버지의 호(號)를 빗대 ‘팔보(八甫)’로 자칭한 저자는 문학의 괘종시계를 1930년대로 돌려 당대 문인을 복원했다.
사후 이상(李箱)을 기려 쓴 박태원의 글은 문인세계를 짐작케 한다. 박태원은 ‘무슨 소린지 한 마디 알 수 없는’ 시를 쓰는 이상을 두고 “그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시가 보고 싶었다”고 만남 이전을 회고했다. 이상의 자화상으로 알려졌던 그림이 박태원의 초상화로 판명난 사연도 눈길을 끈다. 또 김유정이 세상을 떠나고 박태준은 “늘 빈곤에 쪼들리며 눈을 들어 앞길을 바랄 때 오직 ‘어둠’만을 보았을 유정”이라며 추도했다. 박태원에게 “생각했던 바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기대했던 작자”라는 상허 이태준 글, 신문사 친구이던 김기림을 단편에 등장시킨 이야기 등도 흥미를 돋운다.
370여쪽의 양장본엔 ‘소설가 박태원’ 옆에 ‘아버지 박태원’도 서 있다. “사립 밖 층계까지 오셔서 ‘이령아’하고 부르시는 게 아닌가. 무겁게 생긴 책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올라오시는 길이다”고 저자가 기억한 대목, “아까다마(럭키스트라이크)가 없으면 카멜을 집어와야 한다”며 7세
홍정선 인하대 교수의 감수로 책을 쓴 저자는 “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가 그의 ‘속내’를 열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상의 담배파이프가 새겨진 겉표지를 열면 1933년의 경성이 눈앞에 펼쳐진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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