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UBC)의 ‘심청’은 ‘발레 한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986년 초연 이래 국내 창작발레로는 최초로 해외에 진출, 15개국 40여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무대에 올린 횟수만 도합 250여 차례.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 발레 최강국의 콧대 높은 관객들도 눈물을 훔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서양문화에서 생소한 ‘효’ 사상에 기반한 독특한 드라마, 한국적 춤사위가 녹아든 아름다운 안무, 감미로운 음악이 빚어낸 걸작이었다.
발레 ‘심청’이 오는 10~18일 3년 만에 국내 관객을 만난다. 창작 30주년을 맞는 해라 더욱 뜻깊다. 심청 역을 맡은 수석무용수 황혜민(38)과 솔리스트 한상이(31)를 지난달 27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공교롭게도 UBC의 간판스타 황혜민은 현역 단원 중 심청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백전노장, 한상이는 심청으로 첫 데뷔하는 실력파 신예다. 실제로 유독 친한 언니동생 사이인 둘은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챙겨입었다”며 똑같은 머리띠와 레오타드, 치마를 맞춰 입고 나타났다.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에요. 발레단에 들어와서 가장 하고 싶던 역할이었는데….” 긴장과 흥분이 섞여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한상이의 큰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활약하다 2011년 UBC에 온 그는 입단 직후 발에 부상을 입어 3년 가까이 객석에서 선배들의 춤을 바라봐야만 했다. 올해 ‘심청’이 전막발레 첫 주역 데뷔인 그는 “객석에서도 1막 심청이 아버지와 이별하는 부분에서 늘 울었는데, 리허설에 들어가서도 매번 눈물이 나더라”며 “저희 아빠도 딸의 첫 데뷔 무대를 보며 많이 우실 것 같다”고 했다. 그런 후배를 옆에서 애틋하면서도 대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황혜민도 12년 전 심청 무대에 처음으로 올랐을 때 기억을 꺼냈다. “첫 공연때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1막 때 감정이입이 돼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도 나요. 50번도 훨씬 넘게 심청을 연기한 이젠 몸에 완전히 익은 느낌이네요.” 부녀 간의 애끓는 정이 중심이 된 강렬한 드라마가 펼쳐지다보니 안무와 함께 연기의 비중이 크다. 한상이는 “언니가 제 리허설마다 오셔서 직접 무대에 올라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팁들을 전수해주신다”고 했다.
각각 입단 14년, 5년차를 맞은 이들은 ‘심청’이 전 세계 발레 한류의 선봉으로 활약해온 역사를 함께 한 산증인이다. 1987년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첫 해외투어를 마친 뒤 1998년 미국 뉴욕 시티센터, 2001년 워싱턴 케네디센터·뉴욕 링컨센터·LA 뮤직센터 등을 거친 UBC의 ‘심청’은 2003년 프랑스 파리, 2011년 캐나다·오만, 2012년 러시아 모스크바, 2014년 남미의 콜롬비아까지 접수했다. 황혜민은 4년 전 유서 깊은 모스크바 스타니슬라브스키극장에 섰던 게 가장 인상 깊다고 했다. “러시아는 발레의 고장이잖아요. 한국 발레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갔는데 반응이 너무나 좋았어요. 독설로 유명한 현지의 주요 무용평론가가 극찬을 남겼을 때 감격스러웠죠.”
한상이는 중동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와 중남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의 공연을 꼽았다. “오만의 로열오페라하우스는 꼭 궁전 같았어요. 관객들 옷차림도 모두 귀족 같았고요. 3막에서 심봉사가 눈을 뜰 때 객석에서 ‘와~’하는 탄성을 지르며 박수 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는 “콜롬비아에서도 공연 때마다 기립박수가 나와서 신기했다”며 “워낙 고산지대라 무용수들이 춤을 추다 고산병 증상을 호소하기도 해서 힘들었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한예종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황혜민과 한상이는 7살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늘 함께 밥도 먹고 수영도 같이 하는 짝꿍이다. 한상이는 “언니는 학교 때부터 정상에서 빛나던 롤모델이었다”며 “오랜 기간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며 완벽한 춤만을 보여온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에 선배는 “얼굴, 몸매, 유연성과 풍부한 감성까지 발레리나로서 필요한 모든 걸 갖춘 상이는 역대 가장 예쁘고 상쾌한 매력의
이번 무대에는 30주년을 기념해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전 수석무용수 박선희·전은선·강예나 등 역대 심청들이 카메오로 출연할 예정이다. 공연은 10~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0-1300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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