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의 그 장면 기억나? 너무 섹시해서 설레였다니까~.”
지난 16일 저녁 국립극장. 공연 후 관객을 인근 역으로 데려다주는 셔틀버스 안은 달뜬 에너지로 가득했다. 방금 보고 온 국립무용단의 전통무용 공연 ‘향연’을 두고 재잘대며 감상을 나누는 관객들의 목소리는 어리고 싱싱했다. 20대 후반 남짓으로 보이는 여성 관객 둘은 무대에서 박력 넘치는 고난도 테크닉을 잇따라 선보인 남성 무용수의 모습을 기억하며 감탄을 이어갔다. 다른 한쪽에선 “무용수가 입은 한복들이 너무 예뻐 꼭 패션쇼장에 온 것 같았다”는 여성 관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립무용단의 ‘향연’은 여러모로 이례적 기록을 남긴 작품이다. 지난 16~19일 공연을 1200석 규모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리기 일주일 전 A석과 일부 사이드석을 뺀 모든 좌석이 매진되는 바람에 부랴부랴 한 회차를 추가했다. 지난해 12월 초연 이후 입소문이 퍼진 탓이다. 국립극장이 2012년 시즌제를 도입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공연 입장료 수익은 벌써 1억 원을 넘어섰다. 뮤지컬·클래식에 비해 팬층이 확연히 얇은 한국 전통무용 기준에서 대단한 성과다. 4막 12장에 걸쳐 궁중무용·승무·살풀이춤·장구춤 등 다양한 종류의 우리 춤의 원형을 최대한 살린 ‘제대로 된 전통춤’ 공연이었던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관객의 연령대다. 국립극장 홈페이지 예매자 기준 20~30대 젊은 관객층의 비중이 61%, 40대 이상이 39%. 젊은이들의 수가 중장년층의 수를 가뿐히 압도했다. 최근 몇 년간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전통공연을 선보여온 국립극장 산하단체들의 여타 공연에 비해서도 확연히 튀는 수치다. 실제 공연장에서도 좌우 양옆으로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혹은 커플끼리 보러 온 2030 관객들의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흔히 젊은 세대에게 고루하고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전통무용에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시각화의 승리’다. 스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아 무대와 의상에 극도의 세련미를 불어넣었다. 한 벌 안에 여러 색이 화려하게 들어간 무용수들의 전통의상에 과감히 ‘미니멀리즘’을 도입했다. 실제로 12개의 각 장면마다 3개 이상의 색깔이 사용되지 않았다. 유유자적한 선비춤의 무대는 영롱한 푸른색과 흰색, 재기발랄한 장구춤 무대는 숲빛 초록색과 노란색만으로 채워지는 식이다. 점·선·사각형의 반복을 통해 가능한 정갈하고 세련되게 꾸민 무대 배경은 뉴욕·밀라노 등에서 열리는 최첨단 패션쇼를 연상케 했다.
정구호 연출은 “전통 한국무용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는 데 많이 신경썼으며 한국무용의 기본정신과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대화에 필요한 정리정돈을 했다”고 밝혔다. 김예림 무용평론가는 “시각적인 면에서 젊은 층이 매혹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요소가 십분 발휘됐고 디자이너 정구호에 대한 팬덤도 작용한 것 같다”며 “그간 전통무용 공연이 꾸준히 있었음에도 다수 대중에게 선호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던 것을 고려할 때 이번 무대는 혁신적 시도였다”고 말했다.
철저히 관객 입장에서 공연을 꾸몄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무용수 24명이 줄지어 다섯 개 북을 치며 춤을 추는 ‘오고무’ 장면에서 관객이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춤을 즐기고 특유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도록 거대한 원형무대를 지속적으로 회전한 연출이 대표적이다. 2열 종대로 꾸려진 북의 대열이 360도로 거대하게 회전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스펙터클한 뮤지컬·연극 무대에 익숙한 젊은 층에 전율을 줄 만 했다. 남성 무용수 개개인의 기량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소고춤 장면에는 현대무용적 호흡도 미세하게 가미했다. 김 평론가는 “전통춤을 엮은 와중에 현대무용의 호흡과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는데, 이 시대 젊은 무용수들이 추는 춤이란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연’은 향후 수십 년 간 잠재적 티켓파워로 저력을 발휘할 2030세대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성공이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최근 3년 간 30대 이하 관객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데, 전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인이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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