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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문화재청 |
2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북문화재연구원이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 제6차 발굴조사 결과 중심거의 형태와 구조, 축조방법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김제 벽골제를 지난 2012년부터 매년 발굴조사 해왔으며, 이번 3월에는 3년 전 2차 조사결과 확인한 중심거에 대한 추가 조사를 시작했다.
발굴단에 따르면 제방의 중앙부에 위치한 중심거는 현존하는 2개의 수문인 장생거, 경장거와 같은 구조로, 현재 남아있는 규모는 길이 17m70㎝, 너비 14m80㎝이다.
중심거 양쪽에 세운 돌기둥은 현재 상단부는 훼손되고 너비 83㎝, 두께 70㎝ 크기의 하단부만 남아있다.
양 돌기둥 사이의 바닥에는 길이 4m20㎝, 너비 84㎝의 하인방석을 놓았으며, 중앙에 나무판을 삽입할 수 있도록 ‘凹’자형의 홈을 팠다. 돌기둥과 하인방석은 ‘凹’자와 ‘凸’자의 형태로 맞물리게 연결돼 있다.
물을 내보내는 길인 ‘도수로’는 물이 흘러나갈 때 벽체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1~2m 정도의 크기로 정교히 다듬은 직사각형 화강암 석재를 가지고 석축을 쌓았다. 현재 북측에 길이 11m40㎝, 너비(중앙 부분) 4m20㎝ 규모의 2단 석축만 남아있다.
도수로의 바닥은 내려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 머리 크기로 깬 돌을 무질서하게 쌓고, 그 위에 1m~1m50㎝ 크기 화강암 석재를 이용해 얇고 넓적한 돌을 덮었다. 도수로 외부는 방수되는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자 ‘八’자형으로 벌어지게 했다.
중심거를 통해 드러난 수문의 형태는 중국 상해 오송강 하구부에 위치한 지단원원대수갑유적과 유사하며, 제방 성토공법 기술인 부엽공법(나뭇가지, 잎사귀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방식)은 벽골제보다 후대에 축조된 일본 협산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는 고대 토목기술 등 과학기술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실을 제공하는 유적이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김제
이번 조사결과 밝혀진 벽골제 제방 성토공법과 수문 축조기법은 한·중·일 수리시설 간의 비교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뉴스국 김예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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