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요즘 사람들은 몰라. 서커스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동춘서커스의 박세환 대표의 한숨 속에는 서커스에 대한 애정과 서커스를 보지도 않고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이들을 향한 책망, 그리고 공연에 대한 자신감이 한 데 섞여있었다.
1962년 스무 살의 나이로 동춘서커스에 들어갔던 청년 박세환은 일흔이 넘도록 동춘서커스를 떠나지 못했다. 박세환 대표의 50년 전 꿈은 가수나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연극영화과도 없던 시절, 오늘날의 대중문화를 꿈꿨던 박세환 대표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동춘서커스였다. 박세환 대표는 “1980년까지 우리나라 서커스 15개가 한국 대중문화의 중추적 문화 역할을 해왔다. 예술회관도 없고 무대 예술을 하기도 어려웠던 그 옛날,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서커스뿐”이라며 당시 서커스가 지녔던 문화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춘서커스이지만, 사실 1978년 9월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질 뻔한 적이 있다. 천막극장이 무너진 여파로 인해 동춘서커스단이 매물로 나온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서커스에서 나와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동춘서커스의 소식을 듣자마자 수중에 있는 돈을 긁어모아 동춘서커스를 인수, 단장으로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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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커스의 몰락은 너무나도 빨리 왔다. 사회적 변화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볼거리의 홍수는 서커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희석시켜나갔다. 동물쇼를 선보이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곡예의 재미를 강조 하는 등 관객들의 요구에 따라 서커스 또한 수많은 변화를 견디며 버텨왔다.
때로는 서커스를 향한 사람들의 외면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고 말한 박세환 대표이지만 태풍에 극장이 쓰러지고,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으로 타격을 입는 등 각종 위기와 우여곡절을 겪어온 만큼 그의 말에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강단이 담겨있었다.
“그래도 10년 전부터 동춘서커스의 브랜드가 올라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벌써 5년 째 주말 티켓은 90% 이상이 팔리며 때로는 만석이 된다. 이렇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어디 있느냐. 이 기세라면 앞으로의 5년도 문제없다”
서커스가 불황이라고 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만큼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서커스로 꼽힌다.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은 위기에 빠진 한국 서커스에 ‘테마 서커스’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안해 주었고, 이는 동춘서커스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요즘 우리가 올리고 있는 공연의 제목은 ‘초인의 비상’이다. 동춘서커스만의 테마서커스리다. ‘태양의 서커스’와 차별화를 주자면 우리는 40분 만에 18가지의 곡예를 선보인다. ’초인의 비상‘ 외에도 ’뉴홍길동‘이라는 제목의 테마서커스도 찾아가는 서커스 형태로 공연되고 있다. 물론 ‘태양의 서커스’보다 시설, 미술, 음향, 조명 등과 같은 무대장치와 같은 점에서 우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알맹이, 서커스는 똑같다. 날고긴다 하는 ‘태양의 서커스’도 귀신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실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해서 그렇지 동춘서커스의 대부도 상설극장도 시설이 부족하다거나 나쁘지 않다. 낡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천막 안에 들어온 젊은 커플들도 막상 공연장 내부를 보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현대 서커스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테마서커스를 준비하게 된 박세환 대표이지만 서커스의 예술성 강화에 대해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서커스는 서커스다워야 한다”는 것이 박세환 대표가 가진 서커스의 지론이었다.
“세계 최고의 서커스 중 하나로 러시아 볼쇼이 서커스가 꼽히는데, 볼쇼이 서커스는 테마서커스가 아니다. 저도 작품 만들다가 사람들이 하도 ‘태양의 서커스’ ‘태양의 서커스’ 해서 작품을 다 만들었는데 전 솔직히 테마서커스트가 재미 없다. 진짜 유명한 서커스는 정말 서커스만 딱 한다.”
박세환 대표가 말하는 서커스의 진짜 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린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삼대가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국민들의 도움으로 파산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밝힌 박세환 대표는 “동춘서커스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연인 만큼 필요하다면 재능 나눔도 앞장서고, 때로는 돈이 없어 서커스를 못 보는 이들에게 공짜 구경도 시켜 주고 싶다고 말했다.
“동춘서커스는 사회에 베풀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말한 박세환 대표의 다음 목표는 후배 양성이었다. 동춘서커스에 대한 애정으로 50년간 단장의 자리에선 내려오지 않은 박세환 대표이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뒤를 이을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현재 박세환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건강이었다. 동춘서커스의 운영을 위해 몇 해 전 술과 담배까지 끊었으며, 혈압과 당뇨에 대한 긴장도 늦추지 않고 있다.
“앞으로 7~8년 안에 이 자리를 인수인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서커스단원으로 살기 어려운 우리와 달리 러시아나 베이징의 경우 서커스 단원들은 공무원으로 일한다. 국가에서 월급을 준다는 의미다. 서커스에 대한 지원이 없을지언정 그 씨를 말리면 안 된다. 지원을 해야 살아나는데 현실적으로 서커스의 오는 지원예산은 넉넉하지 않다. 다음세대 서커스를 위해 새로운 인재들을 발굴, 양산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서커스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서커스 아카데미’가 필요하다. 신체의 유연성과 묘기를 앞세우는 만큼 10살 미만의 어린 나이부터 몸을 관리하지 않으면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하기 어렵다. 아무도 시도하는 이들이 없기에 이제는 우리가 서커스학교를 만들어 볼까 시작을 하는 중이다. 학교를 만들고 기숙사를 만들고…서커스단원의 육성을 위해 언젠가는 이루고 싶다.”
당분간 서커스의 활성화를 위한 박세환 대표의 일정은 무척이나 바쁘다. 사람들의 접근성을 위해 서울시와 논의를 통해 서울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우리나라 전통예술인 국악과 접목된 서커스를 만들어 볼걸이를 제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동춘 서커스는 내 삶이고 인생 전부”라고 말하는 박세환 대표의 서커스를 위한 움직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