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뮤지컬 ‘투란도트’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친숙하면서도 매력적인 넘버이다. 처음 공연되 때부터 음악적으로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투란도트’의 음악은 서울로 오면서 더욱 풍부해졌다.
뮤지컬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스토리와 인물은 원작과 흡사하나, 배경이 중국 베이징에서 가장의 수중왕국 오카케오마레로 바뀌었다. 망국의 왕자 칼라프는 오카케오마레의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후 마음이 얼어붙은 투란도트는 청혼자들이 자신이 낸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처형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사랑에 빠진 왕자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에 나선다. 칼라프를 마음속으로 짝사랑 하던 류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와주고, 급기야 자신의 목숨을 걸어 그를 살린다. 류의 사랑에 심장이 얼어붙은 저주가 풀린 투란도트는 칼리프와 사랑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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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제작한 ‘투란도트’는 2010년 트라이아웃을 거쳐 2011년 초연무대를 선보였다. 부족한 예산으로도 수정과 발전을 거듭해온 ‘투란도트’는 2016년 처음으로 서울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이 같은 ‘투란도트’의 발전은 넘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스토리의 개연성과 각 인물간의 관계 변화가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받았던 ‘투란도트’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공연부터 새로운 넘버인 ‘그 빛을 따라서’를 추가한 것이다.
처음부터 호평을 받았던 ‘투란도트’의 음악은 서울로 올라오면서 한층 더 화려해졌다. ‘투란도트’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음악에 특화된 작품이다.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사랑을 받았던 칼라프 왕자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뮤지컬로 넘어와서 ‘부를 수 없는 나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오직 복수만’ ‘오직 나만이’ ‘마음이란 무엇인지’ 등 주옥같은 넘버들이 관객들과 만난다. 새롭게 만들어진 ‘그 빛을 따라서’의 경우 원래 있었던 넘버인 것 마냥 기존의 넘버들과 어우러지면서 듣는 맛을 한층 높였다.
‘투란도트’ 제작에 있어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것은 장소영 음악감독을 작곡가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투란도트’를 통해 다시 한 번 작곡 실력을 증명한 장소영 음악감독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장소영 음악감독, ‘투란도트’의 ‘넘버 깡패’로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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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투란도트’에 붙여준 별명이 있다. 바로 ‘넘버 깡패’이다. 한 번 들으면 귓가에 계속 맴도는 친숙한 멜로디로 제일먼저 관객들을 사로잡는 ‘투란도트’는 ‘들을 수 없는 나의 이름’ ‘오직 복수만’ ‘마음이란 무엇인지’ 등 킬링넘버가 즐비하다.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음악이 배우를 선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우들에게 만만치 않은 ‘투란도트’는 곳곳에 속 시원한 고음이 즐비해 배우들의 연기력과 가창력을 동시에 엿볼 수도 있다.
“넘버를 보는 맛으로 공연을 관람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투란도트’ 넘버들. 장소영 음악감독은 어떤 계기로 ‘투란도트’에 합류한 것일까.
“2010년이었다. 대구에서 세계로 나가는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의뢰가 들어왔다. 대본을 읽어보니 ‘투란도트’ 속 캐릭터들이 분명했고, 음악적인 콘셉트가 분명하게 나뉘더라. ‘투란토드’를 하기에 앞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투란도트’라는 제목에서 오는 도전의식도 있었다.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을 하게 됐다.”
‘투란도트’에서 중심인물은 타이틀롤인 투란도트와, 중심사건을 일으키는 칼라프, 그리고 한발 뒤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류이다. 이를 증명하듯 투란도트와 칼라프가 부르는 넘버들은 격정적이면서, 고음이 주를 이루는 반면, 류는 외유내강인 캐릭터 특성에 맡게 상대적으로 음악들이 부드럽다. 여기에 극의 감초 역할을 핑팽퐁팡이 톡톡 튀는 움직임으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환전시켜 준다.
“‘투란도트’를 보면 투란도트가 사는 세계와 칼라프가 사는 세계가 다르다. 투란도트의 음악은 리듬을 위주로 한다면, 칼라프는 선율 위주의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칼라프가 가로줄이라고 하면, 투란도트는 세로줄로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차갑고 복수심에 불탄 사람이 뭔가의 계기로 바뀌어 가는 느낌을 음악으로 템포와 선율로 변화를 주자고 생각을 했다. 대립되는 개념이 하합으로 가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음악을 만들었고, 핑팽퐁팡이라는 인물이 감초 역할을 해서 그 사람의 음악 색을 살리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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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음악감독은 ‘투란도트’ 프레스콜 당시 음악과 관련해 “‘투란도트’는 아무나 못 부르게 하겠다는 각오로 만들었다. 그래서 ‘투란도트’를 하는 배우는 가창력이 꽤 괜찮다는 말을 듣게끔 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다시 언급하니 장소영 음악감독은 웃으면서 “제곡을 듣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듣기는 쉬운데 부르기가 어렵다고 한다. 투란도트라는 인물 자체가 왠지 현실에 있는 사람이 아니니 환상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배우들에게도 도전 의식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작곡가의 욕심도 있었다”고 답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투란도트’에는 킬링넘버가 넘쳐난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중에서도 장소영 음악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넘버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모르는 곡 중 하나가 ‘마음이란 무엇인지’이다. 왜 나에게 마음이 없는지에 대해 부르는 곡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오직 나만이’도 좋아하는 넘버 중 하나이다. ‘부를 수 없는 나의 이름’이 한 사람이 한 곡으로 승부를 본다면, ‘오직 나만이’는 각자의 인물들이 얽혀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넘버이다. 같은 의미로 ‘오직 복수만’이라는 넘버도 좋아하는데, 좋았던 것과 동시에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다. 입체적인 상황과 시간과 공간이 떨어져 있는 인물들이 동시에 불러야 하는 곡인만큼 쉽지 않았다. 어려웠던 곡이었던 만큼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다.”
◇ “함께 만들어 가는 창작뮤지컬의 묘미,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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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봤던 뮤지컬 한 편이 오늘날 ‘믿고 듣는 작곡가’를 탄생케 했다. 클래식을 전공했던 장소영 음악감독은 어느날 접했던 뮤지컬 한편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고, 이후 그는 공연계로 뛰어들었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간 장소영 음악감독은 뮤지컬 ‘하드 록 카페’로 기회를 잡게 됐고, 이후 뮤지컬 ‘피맛골 연기’ ‘형제는 용감했다’ ‘그날들’ 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게 됐다.
“대학시절 어떤 계기로 뮤지컬을 봤는데 너무 멋지더라. 당시 내가 만든 곡으로 배우들이 열심히 부르고 춤춘다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작곡가가 좋은 것은 그 사람에 빙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도 됐다가 작곡가가 되기도 하다가 그런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입장 그 환경을 고민 하는 것이다. 대본을 보면서 나름의 그림도 그린다.”
자신의 직업과 역할에 대해 큰 애정을 보인 장소영 음악감독, 순간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해 졌다.
“일단 대본이 완성된 이후 음악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서로 협의를 통해 바꾸기 마련이다. 작품을 고를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잘 맞는가 여부이다. 작가와 연출과의 콘셉트가 잘 맞는가, 대화는 잘 통하는지, 서로간의 케미가 맞는지 여부를 가장 많이 따진다. 작품은 누구 한명이 잘 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뮤지컬이란 것이 종합문화예술이지 않느냐. 화합이 중요한 만큼 관계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창작뮤지컬을 향한 장소영 음악감독의 애정이었다. 아무리 공연시장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열악한 환경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함께 만들어 가는 창작뮤지컬의 매력에 빠진 장소영 음악감독은 여전히 이를 위해 힘을 쓰고 있고, 이제는 더 나아가 후배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은 힘들다. 가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때로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맞지 않은 사람도 있어 힘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창작뮤지컬을 계속 하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 가는 매력 덕분이다. 함께 파이팅하고 관객과 만난다는 것, 이 하나의 매력이 99가지의 단점들을 덮는다. 그리고 창작뮤지컬을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책임감이다. 나이가 들면서 창작뮤지컬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는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이후 나와 같은 길을 걸어 나갈 후배들이 전보다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작업했으면 마음이 있다. 창작뮤지컬 작업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이 알고, 함께 가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움직이는 것 같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